일요일 아침. 방송은 전국 단일방송 체계로 전환돼 KBS1과 라디오만 나온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를 못 보니 괜히 서운한데. 오후에 지인의 결혼식 참석차 명동성당에 갔다. 사람이 뜸했다. 종교행사, 관혼상제를 제외한 일체의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 건데 다들 오버하기는. ‘연락이 안 되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가족의 문자 메시지를 이제야 확인했다. 수차례 보낸 문자. 발신시각을 보니 저녁에 쇼핑하고 있는 동안이었다. 특정지역 시위봉쇄를 위한 휴대폰 전파방해로 서울 곳곳에는 전파섬이 생겼다. 밤 10시. 통행금지 한 시간 전인데도 벌써부터 거리는 한산하다. 계엄정국 이후 도시는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적막하다.
시청 뒤 프레스센터를 지날 때 사람들이 우르르 나왔다.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 사전 검열을 받고 나오는 기자들이었다. 모든 조간신문은 보도 전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한다. 통행금지 전인 밤 10시까지 시간을 지정한 건 배려인가. 석간은 오전 5시부터. 주간지는 매일 오후. 인터넷 언론은 수시다. 기억하자. 검열로 인한 삭제를 간접적으로 알리는 공란을 실은 신문이나 매체를 발행하는 것은 불가하다. 뭐라도 채워야 한다. 모든 영상매체와 공연도 대본을 미리 제출해야 한다. 준비 중인 영화도 얼마 전 시나리오 1부를 제출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경찰과 검사가 연애하는 내용이니 걱정할 것 없다. 그나저나 이제 대본 없이 찍는 모 감독의 촬영현장은 다시는 볼 수 없는 건가. 유튜브 동영상도 해당되냐고? 잠깐 당신, 유튜브에 접속 가능하다고? 조심해라. 최근 신촌을 지나는 방호부대 장갑차를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고 계엄법 위반으로 잡힌 김모씨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경찰청 홍제동 수사분실 수사3국에 사이버범죄로 조사를 받고 귀가했단다. 아, 이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계엄법 위반인가. 인터넷에 물어볼 길도 없다. 기무사는 정보망통제를 ‘계엄의 성공을 판가름할 조건’으로 삼았다. ‘인터넷유언비어대응반’은 그 어떤 조직보다 막강하다.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포털 및 SNS계정은 계엄법 제9조 계엄사령관의 특별조치권 위반죄로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폐지할 수 있다.
전국 주요 도시가 계엄군의 임무 지역으로 책임부대가 점령 중이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아니냐고? 아니, 헌법상 그리고 법률상 자유가 계엄법으로 제한됐다. 체포, 구금, 압수, 수색, 거주, 이전, 언론, 출판, 집회, 결사에 한해서만. 그래. 일부에 한해서만. 전부 같은 일부. 외국인 등록증과 여권 소지자는 출국을 허용했다. 외국기업 및 법인의 영업활동은 보장한다는 지침이 있었다. 그렇지만 공항은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살벌했다. 계엄사령관 육군대장이 해외 출장 등 업무를 빙자하여 출국하기 위해 주요 공항에 모여들 것을 미리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상의 이야기는 국군기무사령부가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탄핵 심판 판결을 앞두고 계엄 검토 시 작성한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기초로 했다. 제주4·3사건을 ‘제주폭동’으로, 4·19혁명은 ‘학생의거’로, 부마민주항쟁도 ‘소요사태’로 표현한 군사 2급 비밀 문건에는 너무 1차원적이라 그만큼 검고 완전한 디스토피아의 꿈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