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방송에서 ‘고시원에 살았던 경험’이 평생의 고생을 상징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다시는 겪지 않을 과거의 나락’으로 그곳을 묘사하며 훈장처럼 자랑하는 사람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는 걸까. 나에게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험이 있는데 바로 고시원 살이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관보다 조금 큰 좁은 방에 창만 하나 겨우 달려 있었는데, 그래도 서울에 내 방에 생겼다는 게 좋아서 첫날 피식피식 웃으며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위험도 했고(자고 일어나보니 간밤에 비가 새서 스탠드 전선에 빗물이 손을 뻗고 있었다), 좁고 더러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고시원을 ‘가난과 고생’의 척도로 들이댈 때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기분은 어떨지’를 생각하게 된다. 전건우 작가 역시 고시원을 다소 특이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소설을 풀어간다. <고시원 기담>에서 고시원은 유령이 돌아다니고, 거기 살던 사람에게 갑자기 초능력이 생기기도 하고 죽은 사람과 대화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여러 인물들이 고시원에서 겪는 사건들의 기저에는 ‘소외’라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당연하게도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약자이고, 이들은 고시생, 취업준비생, 외국인 노동자, 가출 소녀 등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다행히도 <고시원 기담>은 이들을 타자화하지 않고 이들이 연합하여 세상에 맞서는 모습을 그린다. 사실 제일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유령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분명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차별을 당하고 소외를 당하는 사람들. 고시원에도 분명 사람이 살고 있으며 이들도 도시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미스터리 구조 속에서 빠르게 보여준다.
사람이 산다
고문고시원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살아간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서로 마주치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동선을 짜고 소리를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 패턴을 파악한다. 그래도 가끔 주방에서나, 화장실 앞에서나, 길고 좁은 복도에서나, 바람을 쐬러 올라간 옥상에서 누군가와 예기치 않게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서로 유령이라도 본 듯 ‘헉’ 하고 놀라고는 서둘러 자리를 뜬다. 그렇다. 고문고시원의 잔류민들은 모두 유령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한평짜리 삶을 이어가는 존재. 나도 고문고시원에서 유령이 되었다.(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