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오손그룹은 IMF를 무사히 넘기고,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슬기롭게 대처해 부동산, 투자 중심의 서비스 회사로 자리매김한다. 오손그룹의 정대철 회장 주변에는 (대기업 오너가 늘 그러하듯) 은밀한 소문이 따라다닌다. 그가 아내 몰래 사귀는 신입사원의 성별이 남자라는 등…. 정대철 회장의 아들 정지용은 아버지의 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글로벌 기업의 상속자다운 ‘부르주아’로 성장한다. 물론 정지용을 둘러싼 세간의 소문 또한 만만치 않다. 어딘가 덜떨어졌다느니, 추남이라느니 하는 등…. 여느 재벌가의 3세들이 그러하듯 정지용은 ‘학벌, 미모, 집안’ 삼박자를 고루 갖춘 최영주와 결혼을 하고 오손그룹이 계획한 신도시의 스마트아파트 메종드레브에 신혼집을 차린다. 다양한 계층이 서로 다른 층수와 평수에서 살도록 통제하는 메종드레브에서 정지용은 5평에 사는 이하나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내연관계가 된다. 최영주는 허무하지만 완벽한 자신의 럭셔리 라이프를 인스타그램에 올려 하트를 받는 게 취미이고, 이하나는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인터넷 BJ로 돈을 번다. 극과 극에 있다고밖에 할 수 없는 계층의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는 <N.E.W.>는 김사과의 신작 소설이다. 김사과의 전작 <미나> <테러의 시>를 읽었을 때 빈곤, 폭력, 절망에 둘러싸인 80년대 후반 출생자들에 대해 이 작가가 어디까지 그려낼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김사과는 <N.E.W.>에 이르렀다. 숨이 차오르는 경쾌한 속도감으로 인물들은 자꾸만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그게 파멸에 이르는 길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한껏 차려입은 이하나의 차림새에서 부자연스러움을 간파하고 “저 여자는 가정부인가?” 하고 갸우뚱하는 정지용과 “이 플랫슈즈가 가짜 명품인 건 아무도 모르겠지”라고 생각하는 이하나. 같은 공간에서도 다른 냄새를 맡는 다른 계급을 묘사하는 문장에서는 시대를 읽는 작가의 예민한 후각을 확인할 수 있다.
거울에 비친 나
도대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나의 객관적인 상태는 과연 무엇일까? 순전히 스스로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그녀는 그동안 방치해두었던 인스타그램에 활발하게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무슨 사진을 올리든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부럽다, 예쁘다, 좋아 보여 등…. 아하, 그것이 나의 객관적 상태인가? 내 삶은 예쁘고 좋아 보이는군.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신의 사진에 그런 코멘트를 다는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와 비슷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또 비슷한 반응을 팔로워들로부터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처럼 지금 스스로가 뭐가 뭔지, 내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인 것일까? 그들도 사실은 답답함과 허무함 속에서 속절없이 늙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