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와 어울리기보다 혼자서 책을 끼고 도서관을 향하는 게 편한 대학 신입생 델마는 오슬로의 구름 낀 하늘처럼 무채색의 표정을 곧잘 짓고 있다. 노르웨이의 어느 길에서 어깨를 스친다 해도 특별한 인상으로 각인될 것 같지 않은 수수한 얼굴과 정갈한 옷차림. 델마는 그렇게 순수의 상태로 관객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내 평범해 보였던 델마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하얀색 도화지는 어둡고 강렬한 색들로 채워진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델마>의 델마를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배우”로 캐스팅하고 싶었던 이유도 델마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짐작하지 못하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에일리 하보는 오슬로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재즈밴드 싱어로도 활동했으며, 영화 <닥터 프록터스 버블 인더 배스텁> <더 웨이브> 등에 출연한 적 있는 신인배우다. “영화의 두 주인공 델마와 아냐를 캐스팅하기 위해 거의 천명에 가까운 사람을 만났다. 에일리 하보를 만났을 땐 그녀가 비범한 재능을 지녔다고 확신했다. 에일리는 성숙함과 순수함을 결합한 연기가 가능했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말처럼 에일리 하보는 순수하지만 복잡한 델마 캐릭터를 정확히 이미지화한다. 뿐만 아니라 델마의 몸에 나타나는 이상 증상들, 환각에 사로잡히거나 발작으로 쓰러지는 신체적 도전을 과감히 수행해낸다. 혹독한 수중훈련을 받아야 했고, 뱀과 함께 연기도 해야 했다. 자기 내면의 두려운 능력을 차츰 알아가는 델마처럼, 어쩌면 에일리 하보도 <델마>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는 경험을 했을지 모른다. 2018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슈팅스타상 수상은 그러한 도전에 대한 응당한 보답이었다. 최근엔 노르웨이의 판타지 블록버스터 <애시 래드>(Askeladden) 시리즈에 출연했다. 그녀의 멋진 도전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영화 2017 <애시 래드: 인 더 홀 오브 더 마운틴 킹> 2017 <델마> 2015 <닥터 프록터스 버블 인더 배스텁> 2015 <더 웨이브> 2013 <키스 미, 유 퍼킹 모란> 2012 <더 오하임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