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인간들은 혁명적 위기의 시기에 과거의 망령들로부터 의상과 전투구호, 언어를 빌려와 새로운 장면을 연출한다고 했다. 이 주장은 2016년 탄핵 때 한국군 엘리트들이 채택한 대응 방식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대비 계획에 따르면 일부 군 엘리트들은 과거 쿠데타를 참조하여 시민사회를 무력화하는 레퍼토리들을 구체화하고 현대화했다. 이를테면 통금에 인터넷 검열이 추가됐다.
마르크스는 세계사적 사건은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희극으로 나타난다고 했지만 내게 이번 기무사 사태는 전혀 희극적이지 않다. 비밀문서는 과거의 망령들이 언제든 되살아나 “민주주의는 이제 그만”이라고 명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에 또 다른 비밀문서가 공개됐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당시 사측이 작성한 비밀문서에는 경찰·검찰·노동부 등 정부 부처와 공조를 통해 파업을 강경진압하고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전략이 담겨 있다. 이 계획이 실행된 이후 수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30번째 희생자의 이름은 김주중이다. 특공대의 방패에 찍히고 군홧발로 짓밟힌 기억을 가진 그는 지난 6월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떻게 사람에게 그토록 잔인한 폭력을, 그것도 지극히 의도적으로 행사할 수 있을까?
비밀문서를 들여다보니 정부와 사측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파업 참여 노동자들을 존중해야 할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문서에는 “수술대에 오른 이상 암과 지방 덩어리를 확실히 제거하여 굳건한 체력으로 시장 경쟁에 대비해야 함”이라고 적혀 있다.
기무사와 쌍용차의 비밀문서에는 공통점이 있다. 문서 작성자들은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질서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한다. 그들은 그 질서의 위협 요소들을 판별하여 자신들이 수립한 비밀계획에 따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군대는 시민을 수호한다 했고 자본가는 근로자와 공생한다 하지 않았던가? 왜 그들은 자신들이 공개적으로 표명했던 말들에 반하는 말들을 비밀문서에서 하는가?
그들은 무대 앞에서는 문제 해결 전문가이고 공동체의 책임자이다. 하지만 무대 뒤의 그들은 자신들이 봉사하고 협력하는 사람들 속에서 늘 사람이 아닌 존재들을, 제거해야 마땅할 적들을 물색한다.
그들에게 헌법이 보장하고 역사를 통해 쟁취해온 시민과 노동자의 권리란 평화 시기에만 통하는 수사일 뿐이다. 위기가 닥치면 권리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늘 위기를 준비하고 작전을 짠다.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라도 되는 양. 이때 그들은 우리가 극복했다고 생각한 과거의 망령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빌려온다.
두 문서뿐이랴. 세상에는 수많은 권력자들이 있으니 얼마나 많은 비밀작전들이 수립되고 또한 실행됐겠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작전들에 따라 희생됐겠는가. 그러니 우리가 경계해야 할 나쁜 미래는 또 얼마나 많이 남아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