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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주지훈 -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18-07-31

“<공작>은 몇 만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는 느낌이었다. 어디에 무얼 두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다 같이 둘러앉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사상검증에 충실한 북한 군인 정무택은 그간 주지훈이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각 잡힌” 인물이다. 해외사업에 몰두 중인 북한 고위간부 리명운 처장(이성민)과 한국 정보사 출신의 박석영(황정민) 사이에서 그는 한시도 긴장을 늦추는 법이 없다. 때때로 “서 있는 자세, 눈동자를 깜빡이거나 손가락을 까딱이는 움직임 하나 때문에” 오케이 사인을 받지 못했던 이유다. 겉면의 화려한 액션이 아닌, 스파이영화의 은밀하고도 묵직한 긴장감을 연기한 주지훈은 “a를 연기했는데 a´가 나오는” <공작>의 미묘한 경험을 차근차근 곱씹었다.

-그동안 배우 주지훈이 보여준 면모와는 꽤 다른, 사상과 원칙에 투철한 군인을 연기했다. 캐스팅 이유를 들은 적 있나.

=감독님이 우스갯소리로 ‘황사마(친한 동료들끼리 배우 황정민을 부르는 애칭)를 계속 쪼아야 하는 캐릭터인데, 나이가 어린데도 기죽지 않을 남자배우가 너 말고 누가 있겠니?’라고 하셨다. (웃음) 한마디로 석영-흑금성(황정민)을 괴롭혀야 하는 역할이라서, 조금이라도 그 앞에서 덜 얼어붙는 배우가 필요했던 것 같다. 황 선배와는 같이 <아수라>(2016)를 했고 그때부터 편하게 잘 지냈다. 선배든 후배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항상 어색한 일이지 않나. 안 그래도 작품 때문에 긴장되는데 전에 같이 호흡했던 사람을 만나면 부담을 확 줄일 수 있다.

-정무택은 리 처장과 흑금성 모두를 경계하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 인물이다.

=리 처장과 정무택의 관계가 묘한데, 기본적으로 나는 리 처장의 직속 부하가 아니다. 그가 나이도 많고 굉장한 권력층 사람이기 때문에 내게 소리를 지르거나 ‘세게’ 대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 명령을 내릴 순 없다. 리 처장이 흑금성을 만나서 자기 스타일대로 밀당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두 사람 사이에서 군인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정무택으로선 같은 북한 사람인 리 처장의 행동도 계속 검열할 수밖에 없는데,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의심을 하는 것이 정무택의 임무이자 작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현장에서 연기를 하면서도 미묘하게 새로 생겨나는, 달리 말하자면 ‘어긋나는’ 부분들이 생기더라. 촬영을 마치고 나면 항상 진이 빠졌다.

-정무택의 신분과 지위가 그 사람의 정체성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가.

=그처럼 젊은 나이에 고위직 군인이 된 것은 자기가 잘해서가 아니다. 엘리트 집안 출신으로 태생적으로 북한 군인으로 키워진 사람이라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그에겐 매우 필수적이고 당연한 것들이 있다. 사상 유지다. 굉장히 옳고 중요한 자기 세계에 타인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이 사람은 여기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인가?’ 생각하는 거지.

-강직한 인물인 줄 알았던 정무택이 의외로 미묘한 코미디 포인트도 담당한다. 의도적으로 변주를 준 부분인가.

=굉장히 일방적인 사람이 있다고 예로 들어보자. 본인은 진지할 수 있지만 그런 타입일수록 옆에서 볼 땐 웃기기도 하지 않나. 정무택 역시 누군가를 무섭게 쏘아붙이다가도 리 처장 혹은 북측의 누군가가 그만하라고 지시를 내리면 시간 끌지 않고 이내 바로 접는다. 의도치 않은 코미디가 생기는 부분인데, 배우로서 그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했다.

-북한말은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하려고 했나.

=감독님과 함께 많이 고심했던 부분이다. 평양 사람들은 의외로 사투리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찾자면 관객의 입장에선 조금 약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북한말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이 있는 셈인데 그렇다고 기대치를 충족시키자니 가짜를 연기하는 셈이 됐다. 미리 정해두지 않고, 촬영장에서 감정이 나온 상태에 맞춰서 유동적으로 하자는 회의를 거쳤다. 일부러 더 강하게 악센트를 주거나 오히려 절제하는 식이었다.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등 선배들 사이에서 막내를 담당했고 최근 작품들에서 좋은 선배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나는 절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장에서 선배님들의 연기를 본 이후에 마치 자물쇠가 탁 풀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돌이켜보면 정규 교육 과정에서 연기를 배우지 않았고, 늘 동네친구들 속에만 있던 내가 여러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축복이었다. 워낙 겁이 없어서 선배들의 좋은 점은 다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직접 부딪쳐서 얻은 것들이 뭉쳐져서 언젠가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생기지 않을까.

-<신과 함께-인과 연>과 <암수살인>, 그리고 넷플릭스의 <킹덤>까지 차기작이 줄지어 있다. 또래 배우들이 탐내는 역할들을 독식 중인데.

=그동안 김성훈 감독님의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촬영을 끝낸 뒤 칸에 다녀왔고, 그 이후에 2주 정도 미국 여행을 했다. 돌아와서 <공작> 후시녹음을 마치고 계속 다음 작품 미팅을 하다보니 이렇게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어느 날 한번은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위기감이 느껴지더라. 내가 너무 무리했나…. 이러다 한동안 쉬는 거 아닌가. (웃음) 요즘은 정말 매사에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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