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에 입대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내무반에 괴담이 떠돌았다. 불침번을 서던 동기가 귀신을 봤다는 것이다. 복도 창밖으로 오래된 군복을 입은 이가 “왼손 파지, 왼손 파지…”를 중얼거리다가 사라졌다는 목격담이었다. 동기들은 그 귀신을 ‘왼손 파지 귀신’으로 불렀고, 불침번을 설 때마다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그 귀신을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 훈련소에 전해져 온다는 옛날 귀신 이야기도 등장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들 훈련소에 한번밖에 머물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얘기들이 전해졌는지 모를 일이지만 귀신의 존재는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흥밋거리였다. 인간은 인지적으로 불명확한 대상에게 불안을 느끼면 인과관계를 찾아 해소하려는 심리가 있다. 이는 이야기의 형태, 즉 괴담으로 발전하고, 물리적으로 닫힌 공간이나 정서적으로 고립된 집단의 폐쇄성으로 인해 증폭된다. 그렇게 불안은 실체적 공포가 되고, 확산된 공포는 생명력을 갖는다.
과거엔 귀신이나 자연 속 신비현상처럼 오컬트 색깔을 띠던 것이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그 대상이 같은 사람으로 향한다. 타자화한 특정 집단이나 사람 혹은 그 사람이 지닌 바이러스나 질병이다. 근래 한국 범죄영화 속에 공포영화 못지않게 두려운 모습으로 대상화하며 그리는 캐릭터를 보면 주로 불법체류자나 조선족 등이 아니던가. 과거의 호러 무비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나 소수자, 여성과 어린이를 가상의 공포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최근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들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이후 인터넷에는 난민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난민 500여명 중에 취업이나 다른 목적으로 온 위장 난민이 있다는 얘기나 난민 신청자에게 생계비로 월138만원을 지원한다는 얘기는 모두 가짜로 판명됐다. 모슬렘 난민 입국 이후 범죄가 증가했다는 해묵은 소문처럼 다른 이야기들 역시 대부분 괴담에 가까운 낭설이다. 하지만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는 벌써 난민과 관련된 반대 입장과 난민법 폐지 주장을 담은 청원까지 올라와 단기간에 30만명을 훌쩍 넘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불안한 걸까.
“우리는 지금 제주도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혀 있어요”라고 말하는 예멘 난민들의 목소리에서 오히려 거대한 섬에 갇혀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은 분단으로 인해 사실상 지리적으로 섬 같은 환경 속에 경제성장을 이루며 사회를 지속했다. 그 사회의 인구 절반은 수도권에 집중해서 살아 인구밀도는 높지만 파편화된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갇힌 사회에서 미지의 타자는 쉽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괴담 속 공포의 대상은 언제나 내가 아닌 타인이다. 하지만 현실 속 진짜 악마는 멀리 있지 않다.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깥의 악마가 아니라 좀처럼 진화하지 않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다. 방심하는 동안 우리 안의 야수성은 우리 눈을 가리고 서 있을지 모른다.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가상의 악마를 만들기 전에 우리의 공포에 깃든 불안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를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