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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도둑들
김혜리 2018-06-27

*<오션스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들의 섬>

일본 메가사키시의 모든 개가 쓰레기 섬으로 추방된다. 반려견을 빼앗긴 많은 시민 중 딱 한 사람, 12살 소년 아타리만 친구를 구하러 쓰레기 섬까지 온다. <개들의 섬>의 본토 장면이 일본 문화의 빽빽한 태피스트리라면, 폐기물 섬에서 소년과 개들이 벌이는 모험은, 구도의 묘(妙)와 개의 행동 특성을 살린 애니메이션이 빛난다. 코와 귀의 선제반응, 망설일 때 들리는 앞발, 머쓱함을 모면하려는 땅 파기 시늉 등 <개들의 섬>의 주역들은 과한 의인화 없이 개답다. 한편 친구를 찾아 섬을 횡단하는 아타리와 다섯 마리 개를 대사 없이 음악과 롱숏의 연쇄로 보여주는 부분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깊은 감흥을 부른다. 이 작고 다치기 쉬운 존재들은 지진, 쓰나미, 화산이 남긴 다양한 폐허를 좌에서 우로 총총히 가로지른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이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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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오션스8>에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이 보여준 발끝 휘날리는 영화적 리듬감이 결여돼 있다. 일곱명의 멤버를 하나씩 소개하고 완전한 팀을 이루기까지 과정은 의무방어전 느낌도 든다. 이는 우리가 <오션스> 시리즈의 작법을 이미 숙지하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게리 로스 감독이 소더버그만큼 창의적 연출자가 아니긴 해도, <오션스8>를 가리켜 출연진의 성별만 기계적으로 바꾼 영화라는 비판은 부당하다. 단순히 남자가 하던 일을 여자가 수행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에피소드에 여성의 경험을 반영하고 여성 관객의 쾌락에 봉사하는 하이스트 영화이기 때문이다.

먼저 <오션스8>의 주 무대는 뉴욕이다. 인생 한방의 흥청거림과 철저한 보안에 도전하는 긴장감이 넘치는 <오션스 일레븐>의 라스베이거스 카지노호텔에 비교하면 심심한 배경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뉴욕은 화려한 첨단 유행의 소비 공간인 동시에 다양한 계급과 인종이 어울린 도시이기도 하다. 데비 오션(샌드라 불럭) 일당은 메트로폴리탄 갈라의 목걸이 절도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카르티에 보석상과 패스트푸드점, 고급 갤러리와 야바위 노름이 벌어지는 공원처럼 가장 고급스러운 장소와 정반대의 공간을 거의 의도적으로 바삐 오간다. 막 출소한 데비의 범죄 재능은, 이 여성이 감옥에서 5년간 느꼈을 법한 갈증을 해소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소개된다. 데비는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부터 찾아가 반품을 가장해 자기를 꾸밀 물건 일습을 가볍게 훔쳐내고, 5성급 호텔에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가 전화 한통의 속임수로 맨해튼이 내려다보이는 숙소 욕조에 몸을 담근다. 오빠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이 유들유들하고 주목받는 남자라면, 데비 오션은 포커페이스다. 그리고 오빠 대니보다 오래 치밀하게 계획하는 스타일이다. 데비는 5년간 교도소에서 시뮬레이션을 했으며 심지어 어수선한 5인실 감옥에서는 집중해서 플랜을 다듬기 어렵다고 판단해 일부러 말썽을 일으켜 독방으로 옮기기도 했다. <오션스8>는 범죄영화치고 드물게 욕설과 폭력이 희소하다. 그 자체가 긍정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남성 주도의 기존 하이스트 무비와는 다른 방식의 게임을 설계했다는 방증이랄 수 있다. 범죄의 결정적 국면들이 남자가 들어갈 수 없고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은 여자 화장실에서 이뤄진다는 점도 눈에 띈다(만약 한국영화였다면 나이브한 설정이었으리라는 점이 울적하다). 이것만으로는 신통할 게 없지만 목걸이 감정 및 해체 전문가인 아미타(민디 캘링)가 기저귀 교환대를 작업공구 거치대로 용도 변경할 때는 웃음이 터진다. 남자 도둑 혹은 보안요원이라면 눈여겨보지 않을 만한 구석이다.

작전의 표적인 카르티에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15m 지하 금고에 들어있지만 폭파 전문가는 데비의 팀에 필요 없다. <오션스8>의 디데이 현장으로 설정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갈라는 특히 여성 유명인들이 그해의 컨셉에 따라 의상으로 색다른 정체성을 갈아입는 행사다. ‘천상의 몸: 패션과 가톨릭적 상상력’이 주제였던 2018년 실제 메트 갈라에는 <오션스8>의 해커 나인 볼로 분한 리한나가 호스트의 일원으로 참가해 교황의 모자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영화는 갈라의 테마를 ‘유럽 왕실 패션사’로 무난하게 설정해, 작전을 완수한 데비와 멤버들이 화려한 야회복으로 갈아입고 영화 속 캣워크 타임을 즐기도록 했다. 혹자는 갸웃할 수도 있다. 결국 페미닌한 매력의 호화스러운 전시가 이 여성 장르영화의 클라이맥스란 말인가? 그러나 이 장면은 남성 관객에게 봉사하는 눈요기가 아니라 오랜만에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협력해 과업을 성공시킨 여성들의 신나는 뒤풀이에 가깝다. 스크린 속 여성들이 성장(盛裝)을 스스로 즐기고 있으며, 객석의 여성들이 남자 동행들보다 크게 탄성을 올린다. 카메라도 배우의 몸을 더듬지 않는다. 그 시점까지 팀의 작전에 소위 미인계가 없었다는 사실도 이 장면을 편히 볼 수 있게 돕는다. 물론 실용적 근거도 있다. 데비 일당은 차려입은 파티 손님들 사이에 섞여 아미타가 해체한 목걸이 조각조각을 각자의 액세서리인 척 반출해야 한다. <오션스8>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거액의 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매혹적인 장신구로서도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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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도 결과도 <오션스8>는 메시지에 주력하는 영화는 아니다. 굳이 8로 숫자를 정한 까닭도 흥행에 성공할 경우 (최근 할리우드 프랜차이즈의 기본 유닛인) 3부작을 도모하려는- <오션스 일레븐>이 있으므로- 복안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오션스> 시리즈의 주요 소구력인 위트의 큰 부분을 여성이 처한 사회적 조건에서 찾는다. “당신도 우리도 알다시피”라고 찡긋하는 윙크들은 마치 술술 넘어가다 씹히는 버블 티의 타피오카 펄처럼 쫄깃하다. 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데비가 남자 멤버를 배제하는 이유는 주목받아서다. “우린 평생 무시당해왔는데 이번엔 그게 필요해.” 과연 미술관 감시카메라를 조작하기 위해 데비와 동료들은 전시된 작품을 바꿔치기하는데 경찰과 언론은 곧장 남성 게릴라 아티스트 뱅크시의 행위로 추정하고 더 파고들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일당이 목걸이 절도에 끌어들이는 남성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웨이터다. 상류층 연회에서 이 일용직 청년은 쉽게 간과되는 2급 구성원이다. 바깥세상의 여자들처럼. 엄청난 장물인 목걸이를 처분하는 묘안도 노년에 접어든 여자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을 역이용한다. 데비가 섭외한 나이든 여성들은 목걸이의 일부를 들고 보석상을 찾아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미망인’을 연기하며 흐느끼거나, 말상대 없는 늙은 여자의 수다를 풀어놓는다. 보석을 사들이고 경매하는 남성 전문가 중 누구도 그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요컨대 데비의 성공비결은 사회적 약자가 무시당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다. 그리고 무시당한 구슬 서말을 꿰는 실이다. 모범 주부로 살아가느라 좀이 쑤시던 태미(사라 폴슨)가 데비의 제안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장면은 <오션스8>의 키워드가 ‘한탕’이 아니라 ‘기회’라는 사실을 선명히 한다. 여성 배우들을 칭찬하면서도 캐릭터의 입체성과 동기가 부족하다고 부언하는 많은 평을 읽으며 어리둥절 했다. 남성판 <오션스>의 멤버들은 태미보다 온전한 인물이었나?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실천한 데비보다 절실한 동기가 있었나?

<오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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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오 루시!>의 세츠코(데라지마 시노부)는 전망도 낙도 없이 지루한 업무를 반복하는 사무직 비혼 중년이다. 오래전 언니에게 연인을 빼앗긴 이후 언니와 소원한 조카와 가깝게 지내는 것으로 은근히 복수하고 있지만 조카 역시 이모를 이용하는 눈치다. 세츠코의 좁은 아파트는 빈 맥주 깡통과 쓰지도 않는 물건, 담배 연기로 포화 상태다. 불행 중에도 주목받는 불행이고 그렇지 않은 불행이 있는데 세츠코의 것은 후자다. 영화 도입부가 냉혹하게 요약하는 대로, 세츠코는 자살을 앞둔 생면부지의 남자가 마지막으로 성추행하는 대상이고, 그런 일을 당하고도 무덤덤히 출근하는 여자다. 세츠코는 절대 선량하고 가련한 약자가 아니다. 데라지마 시노부는 불운하기에 불친절한 인물을, 세상에 대한 경멸을 감춘 의뭉스러운 얼굴로 절묘하게 표현한다. 그의 연기에는 관객의 호감을 구하려는 잠재의식조차 없다. 한편 삶 전체의 역전을 체념한 세츠코의 눈은 오히려 작은 행복의 조짐에도 어둠 속 고양이의 그것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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