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을 읽다가 여러 번 피식 웃었다. 귀여운 표지를 한 SF소설인 줄 알았는데, 실은 외계를 배경으로 한 귀여운 코미디 소설이었던 것이다. 배경은 라비다 행성이다. 여기선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작물이 절로 자랐다. 노력이나 기술 없이도 편하게 먹고살 수 있었던 라비다인들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행성이 ‘행성감기’에 걸리고, 농작물이 죽거나 설익기 시작하며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하는 것이다. 행성인들은 사실 지구의 TV 방송 <농사의 전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지구인들을 납치해서 농사 기술을 배우자!” 그렇게 행성으로 지구인들을 납치했지만, 문제는 이 방송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였다는 것이다. 하필 납치해온 지구인들이 농사 전문가가 아니라 배우였던 것. 예능 프로그램의 몰래카메라인 줄 알고 선뜻 납치당한 지구인과 그들에게 농사를 배워야만 하는 라비다인의 황당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의 배경은 행성이되 주인공은 납치된 인간과 ‘인간적’인 외계인들이다. 상상력을 동원하면 외계인들이 <전원일기>를 보고 양촌리 사람들을 납치해 농사를 배우려 하는 셈인데,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일어나는 문제가 라비다 행성에서도 이어진다. 소설 초반까지는 라비다 행성이 유토피아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면 이곳에도 계급, 세대에 따른 갈등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키며, 문제를 왜곡되게 보도하는 미디어가 존재한다. 역설적인 것은 이 문제를 외부에서 들어간 인간들이 해결한다는 것이다. 배경이 지구가 아니라며 짐짓 SF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지구 밖의 상황을 빗대 인간과 지구를 풍자한다. 다만 풍자의 방식이 직설적이지 않고 은유적인데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만드는 사건들이 소소하게 이어진다.
슬픔이 왜 있어요?
“당신의 작은 위 안에 얼마나 큰 슬픔이 들어있는 건가요?” 도로마디슈가 물었다. “슬픔은 위가 아니고 마음에 있어요.” 재이니는 나직이 말했다. “슬픔이 왜 거기 있어요? 마음은 먹는 겁니다.” (2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