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작가의 <침대와 책>을 좋아했다. 당시 작가의 북 콘서트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한 독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많은 책의 문장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엄청난 다독가인 작가는 에세이에서 수많은 문장을 인용한다.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메모를 많이 해요. 제 책에는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습니다.” <뜻밖의 좋은 일>은 정혜윤의 독서 에세이다. 전작 가운데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과 같은 방식의 글쓰기다. <사생활의 천재들>에서는 명사들과 나눈 인터뷰를, <그의 슬픔과 기쁨>에서는 르포르타주를 썼던 정혜윤이 본진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책은 ‘책에 대한 책’이다. 책에 대한 책을 책으로서 리뷰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먼저 밝혀둔다.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인생이 뭐 이 따위인가 싶을 때, 좌절할 때… 책은 힘이 되어준다. 그럴 때마다 어떤 책이 온화한 빛을 내어주었는지 정혜윤은 찬찬히 써내려갔다. ‘다 잘될 거야’를 세상 최악의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지적하고, ‘그래 봤자 아무런 차이도 없어’를 사상 최강의 허무주의라고 말하는 이 책이 지향하는 삶의 태도는 삶을 직시하되 긍정하기다. 다 잘되지 않을지라도, 그래 봤자 아무런 차이도 없을지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옆 사람의 손을 잡고, 나의 하루를 충만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최악의 긍정과 최강의 냉소 사이에서 온기를 띤 문장들을 따라가면 한쪽으로 밀쳐놨던 희망이 뽀얗게 떠오른다. 특히 인상깊은 것은 커트 보니것의 졸업식 연설문 모음집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에 대해 쓴 부분이다. 커트 보니것의 삼촌은 행복할 때마다 그 순간을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한여름 사과나무 아래서 레모네이드를 마실 때면 삼촌은 외쳤다.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맛있는 순간들이 온다. 그 충만함을 붙잡으라고 말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기쁨과 꿈의 재료
우리는 삶이 생각대로 되기를 원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것, 뜻밖의 것을 만나면 더 기쁠 수 있다. 그날 나는 오래오래 기뻐했다. 가슴이 뛰고 즐거웠다. 아름다운 것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덧없는 것을 얼마든지 기쁨과 꿈의 재료로 삼을 수 있다. 한때 느꼈던 기쁨을 조금 더 오래가는 기쁨으로 만들어볼 수도 있다. 책 읽기에 적용되는 원리도 같다. 책에서 읽은 것을 현실에서도 만들어보려고 시도하면서,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살아내려고 하면서, 마치 사랑이 한순간의 꿈이 아닌 것처럼 감동과 깨달음을 한순간의 일로 만들지 않을 수 있고, 일시적인 기쁨을 오래가는 기쁨으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 수 있다.(56~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