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들렀다. 베스트셀러답게 보무도 당당히 표지가 앞면으로 세워져 있는 책들의 제목을 눈으로 따라갔다. 표지만 봐도 자존감이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현재의 나여도 충분하다고 위로하는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10년 전만 해도 책은 우리를 더 채찍질했던 것 같다. 좀더 노력하라고, 더 열심히 뛰라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지금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자기계발서들이 베스트셀러 상위를 점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서들을 읽고 더 나은 미래의 나를 꿈꾸기도 했다. 자기를 계발해야 하는 시대를 지나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인정하고 발견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파스텔 톤의 표지에 토닥토닥 위로가 더해진 책들을 훑다가, 어차피 이들 역시 자기계발서의 연장이 아닐까 싶어졌다. 결국 우리는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나아지기를 소망한다. 다만 바라는 바가 달라질 뿐이다. 지금보다는 평화로운 마음, 지금보다는 안정적인 생활, 지금보다 덜 불안한 미래. 물론 여기서 가장 어려운 일은 불안을 떨쳐버리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다소 감상적이 될 필요가 있다. 6월의 북엔즈 책장에는 감성이 충만한 소설과 에세이집 4권이 꽂혔다. 최정화 소설집 <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불안을 동력으로 하는 8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다. 이들은 원래의 평온한 상태로, 모든 것을 돌리고 싶다. ‘본격 전원 SF’라는 부제가 달린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귀여운 SF소설이다. 외계인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지구인을 납치하는데, 알고 보니 이들이 농부가 아니라 농업 드라마의 배우라는 설정으로,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더 나은 행성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정혜윤의 에세이집 <뜻밖의 좋은 일>은 삶의 기술을 책에서 찾는 법을 알려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술이란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튼튼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제목부터 강렬한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는 하라 료의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시즌2를 여는 소설이다. 일본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최고봉인 하라 료는 신작에서도 도쿄의 메마른 풍경을 배경으로 음모를 파헤치는 탐정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치고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