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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이용녀 -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18-06-19

기꺼이 자신의 수고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수십 마리의 유기견과 함께 생활 중인 이용녀 배우는 농담 반 진담 반 “유기견 사료 값을 벌기 위해” 영화 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받은 만큼 주고 갈 뿐”이라고 가볍게 손사래를 치지만 그는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 일에 선뜻 발을 들일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옳다고 판단하면 주저하지 않는 배우에게 <허스토리>는 꼭 맞는 옷처럼 보인다.

-이제껏 해왔던 역할과는 약간 다른 캐릭터다. 어떻게 연락을 받았나.

=이옥주란 이름의 할머니 역이다. 주로 꽃신 할매라고 불리는데 약간 모자라고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일단 연락이 온 것 자체가 감사했다. 영화가 주는 의미도 좋았지만 내게 좀처럼 제안이 오지 않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해왔던 역할들은 세고 강하고 무서운 캐릭터가 많았는데 옥주 할머니는 착하고 순하고 꾸밈이 없다. 사실 일상의 나와 많이 닮은 것 같다. 맹하고 꾸밀 줄 모르고. 걱정도 됐지만 놓치고 싶지 않았다. 차후의 문제들은 감독님이 책임지라고 하고 덥석 시작했다. (웃음)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이 어땠는지.

=심정적으로 쉽진 않았다. 평소에 뉴스에 나오면 나도 피하고 싶다. 내가 당장 해결할 수도 없고 감당하기 힘드니까. 하지만 누가 됐건 언젠가 꼭 한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세대나 빈부를 막론하고 한국 사람이라면 외면할 수 없는 책임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숙제를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건 창피한 일이다. 영화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넓게 다가갈 수 있으니 물꼬를 틀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단지 할머니들의 고통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해봅시다’라고 부딪치는 부분이 좋았다.

-딱딱하고 고된 법정 투쟁 중에도 꽃신 할매는 일종의 윤활유 같은 생기를 부여한다.

=맞다. 한마디로 아이 같다. 힘들다, 무섭다는 일차원적인 반응만 있을 뿐 복잡한 계산이 없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어려웠다. 지나치게 과장된 캐릭터를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약간 모자란 할머니지만 그렇다고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마냥 바보처럼 보이기만 해서도 안 되었다.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오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전반적으로는 감독님을 믿고 따라갔다. 모두가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면서도 디렉션이 정확하다. 일단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해서 배우가 계속 다음 장면을 고민하게 만든다. 귀여운 여우다. (웃음)

-그동안 주로 맡은 역할들은 분량에 관계없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예를 들면 무속인, 악당, 정체불명의 기괴한 사람 같은? (웃음) 주로 캐릭터에 기대는 역할들을 소화하다보니 개인적으로도 약간의 피로감이 있었다. 그 와중에 꽃신 할매 같은 맑은 역할을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이 영화에 즐겁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현장 분위기도 좋았고 동료 배우들도 서로를 살뜰히 챙겨주고 존중하는 분위기라 부담 없이 즐겼다. 개성이 강한 역할은 도리어 쉽다.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표현하면 된다. 정말 어려운 건 생활 연기다. 나도 상황이 허락하는 한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를 해보고 싶다.

-유기견을 비롯해 동물보호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주인을 1500마리 정도 찾아줬다. 뭔가 의식해서 한다기보다는 그냥 책임감이다. 하다보니 점점 일이 커져서 3년 전부터는 동물보호에 관한 입법 운동을 하고 있다.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는 개도 축산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데 이걸 분류시키는 입법을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운동 중이다. 6월 17일부터 한달 동안 진행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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