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많이 준다면야 팀을 이리저리 옮기는 일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과소비 시대에서 한 축구팀에서만 20년 넘게 뛴 반디에라는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반디에라(bandiera)는 이탈리아 축구 용어로, 깃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한 구단을 상징하는 선수를 가리킬 때 쓰이는데,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하는 게 잦은 이탈리아에서 반디에라라 불리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유벤투스의 ‘판타지스타’ 델 피에로, AC 밀란의 ‘수비 교과서’ 파올로 말디니, 인테르의 ‘트랙터’ 하비에르 사네티 그리고 AS 로마에서만 무려 25년이나 뛴 프란체스코 토티가 21세기 이탈리아의 반디에라라 불릴 수 있다. 이중에서 한 도시를 상징하는 선수는 토티 하나뿐이다.
<프란체스코 토티: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를 상징하는 이탈리아 축구선수 토티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이탈리아 축구를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김정용 <풋볼리스트> 기자가 직접 쓴 토티 전기다. 토티 하면 AS 로마의 4-6-0 전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2005/2006 시즌, AS 로마 감독으로 부임한 대머리 감독 루치아노 스팔레티는 스트라이커 자원인 몬텔라, 카사노, 농다를 쓸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2선에서 뛰던 ‘트레콰티스타’ (공격수의 본능을 타고났지만 미드필더처럼 플레이하는 선수) 토티를 원톱으로 올렸다. 그의 결정은 혁명이었다. 로마의 원톱으로서 토티는 최전방에 머무르지만, 팀 수비가 성공하고 공격으로 전환되면 2선에 가까운 지역에서 공을 잡은 다음 공격을 조립해나간다. 최전방으로 뛰어가는 보통의 스트라이커와 다른 움직임이다. 상대팀 수비수들은 후방에 내려간 토티를 따라 내려갈지, 아니면 토티를 두고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그때 2선에 있던 만시니나 페로타나 타데이가 전방으로 침투하면 토티가 그들에게 패스해 득점으로까지 이어지게 했다. 이같은 토티의 움직임을 두고 현대 축구에선 ‘가짜 9번’ 전술이라 부르는데, 가짜 9번으로 한때 유명했던 메시나 파브레가스보다 토티가 원조인 셈이다.
AC 밀란, 유벤투스, 인테르 등 이탈리아 북부팀이 우승을 많이 했던 까닭에 남부팀인 AS 로마는 늘 2인자에 머물러야 했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토티는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그것이 만년 2인자 토티가 매력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