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런 질문지를 받았다. “페미니스트로서 결혼은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행위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역이라는 말에 일단 간담이 서늘해졌다. 우리 사회에서, ‘부역’이라는 말은 친일 부역자라는 말처럼 주로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자를 지칭하는 무시무시한 용례로 사용되어왔다. 알고 지내던 이웃 사람들끼리 적과 아군으로 갈라져 갑자기 싸우게 된 것도 어리둥절한데, 똑똑한 이웃집 자식에게 밥 한 그릇 넘겨주었다고 해서 공산당 부역자가 되어 총살을 당하기도 하고, 전쟁터에 끌려가면 대가 끊긴다는 공포에 하나 남은 손자를 굴에 숨겨두고 징집을 피하려 한 것이 중대한 국가에 대한 반역죄가 되었던, 그런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부역이니 공모니 하는 말들은 참으로 힘이 세다. 나는 그 말들의 힘이 아직도 무섭다.
부역은 다양한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부역(賦役)은 한자 뜻으로는 일을 시킬 구실을 말하는데, ‘국가나 공공 단체가 특정한 공익 사업을 위하여 보수 없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노역’이라고 뜻풀이된다. 부역(附逆)의 또 다른 뜻은 믿고 의지하는 것을 배신하는 것으로,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행위를 말한다. 첫번째 뜻풀이에서 부역은 국가 혹은 팽창주의적 국가인 제국에 의해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의 현실을 강조한다. 영어로는 강제노역(forced labor)이라고 사용되며, 부역자는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착취당한 희생자이다. 이때 부역의 문제는 국가폭력의 가해자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두 번째 뜻풀이에서 부역은 나치에 조력하거나 친일행위에 동조한 행위 등 가해자에게 협력이나 동조한 행위이며, 부역자 개인의 의지와 자발성의 정도에 따라 가해의 일부로서 사회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요구 받는다. 친일, 친미, 반공 등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 속에서 부역의 문제는 결코 단순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난 역사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이 가치에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에 합의하고 있는가를 둘러싼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결혼 자체를 부역으로 취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부장제가 무너진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결혼의 의미는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혼인 자체가 부역의 증거가 되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결혼제도 자체가 공동체의 이해와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가능하다. 가부장제 자체가 불법이 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혁명이 오기 전에 부역자부터 찾아낸다는 소리는 들어본 일이 없다. 또한 설사 페미니즘이 정말 혁명적으로 관철되어 지금까지의 성과 사랑, 가족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완전히 변화된다고 해도 부역자 색출이라는 방식은 일상의 혁명인 페미니즘의 지향과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 나와 같지 않으면 모두 틀렸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공권력으로 만들고자 하는 태도다. 이를 역사와 문화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급진적인 문제제기로 혼동하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