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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영화인①] 김영탁 감독 - 현재를 사는 법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8-06-07

소설 <곰탕>

조남주(<82년생 김지영>), 히가시노 게이고(<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한강(<흰>), 무라카미 하루키(<버스데이 걸>), 김영탁(<곰탕>). 지난 4월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인데, 내로라하는 작가들 사이에서 김영탁이라는 이름이 유독 튀었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2010), <슬로우 비디오>(2014)를 연출했던 영화감독인 그가 내놓은 첫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흔한 일은 아니었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곰탕>은 갑자기 툭 튀어나와 출간 두달 만에 파죽지세로 6쇄를 찍었고, 3만부나 팔렸다. 책 출간 전에 연재됐던 카카오페이지에선 5월 말 현재 50만9천뷰를 기록하고 있다. 이전 최고 기록이 약 10만뷰라고 하니 인기가 실감된다.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에 살고 있는 주인공 우환이 부산의 유명한 곰탕집에서 곰탕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직접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연출해온 김영탁 감독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했다. 소설이나 시를 즐겨 읽었다. “50살이 넘어서 영화감독으로서 스스로 만족할 만할 때쯤 소설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던 차다. 그런데 2011년 이별 준비조차 제대로 못할 만큼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여러 감정을 쌓아만 두고 풀 여유조차 없었던 30대 후반, 그는 전작 <슬로우 비디오>를 찍은 뒤 인도와 스리랑카로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갑자기 어른이 됐다. 마음 준비 없이 가장 역할을 하느라 (마음이) 아픈 티도 못 냈고, 힘들다는 것조차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여행 초반에는 즐겁지가 않았다. 나를 위한 선물을 줘야겠다 싶었다. 글을 쓰자. 가장 즐거운 일이 글쓰기니까.” 그는 서울에 있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마흔살이니 40일만 써볼게”라고 말했다. 원래 생각했던 50살보다 무려 10년이나 일찍 소설을 쓰게 된 셈이다.

그가 소설을 쓰기 위해 꺼낸 소재는 아버지가 좋아하고, 어머니가 잘 끓였던 곰탕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을까. 김영탁 감독은 집에서 아내, 아내 친구와 함께 셋이서 어머니가 보내준 곰탕을 끓여먹다가 아버지 생각이 나 “시간여행이 가능하면 곰탕을 들고 과거로 가서 아버지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가 아버지 생각이 났는지 분위기가 숙연해졌는데, 이를 잘 모르던 아내 친구가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하더라. 본능적으로 작업실로 쓰던 옆방으로 달려가 메모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은 만나지 않아도 자꾸 생각나는 것처럼 이 아이템은 그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고, 그럴 때마다 살이 조금씩 붙어나갔다. 마흔살이 된 그는 스리랑카 콜롬보의 한 호텔에서 밥 먹는 시간만 빼고 방에 틀어박힌 채 <곰탕>을 써내려갔고, 매일 그날 쓴 원고를 아내에게 보냈다.

이 소설은 행복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는 주인공 우환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가서 가족을 만난 뒤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서울에서 살면서 부담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는 강박이었다. 심지어 행복추구권이라는 권리까지 있지 않나. 꼭 행복해야 하나. 우환을 통해 행복에 대한 욕망이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게 김 감독의 얘기다. 처음에는 우환이 자신의 부모인 순희와 강희 커플을 갈라지게 하려고 한다. 둘이 헤어져야 자신이 불행한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다. 이 부분을 코믹하게 풀어내긴 했으나, 둘을 갈라놓겠다는 생각은 과거로 온 우환의 첫 욕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에서 존재조차 모르는 가족을 과거에서 만나는 시간은 우환이 욕망을 가지게 되는 시간이다. 다시 미래로 돌아가야 할 우환이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과거에 머물기로 결심하는 1부(미래에서 온 살인자)의 마지막 장면이 꽤 울컥하는 것도 행복해지길 원하는 그의 마음이 간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는 자살을 준비하던 주인공이 다시 살기로 결정하는 <헬로우 고스트>,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슬로우 비디오>와 비슷한 맥락에서 읽히기도 한다.

인물과 사건 설정을 소개하고, 드라마를 쌓는 데 공을 들이는 1부와 달리 2부는 양창근과 강도영 두 형사가 미래에서 온 박종대를 쫓고, 김화영이 미래로 돌아가지 않는 우환을 죽이려는 추적극이다. 사건 위주로 전개되는 까닭에 서사 전개 속도가 무척 빠르다. 그러면서 욕망을 탐한 뒤 불행해지는 우환을 통해 시간여행이 가능해도 결국 우리는 현재를 살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지칠 대로 지친 시기에 40일 동안 매일 규칙적으로 쓴 <곰탕>은 앞만 보고 달려온 김영탁 감독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곰탕>은 계약서 없이 쓴 첫 글이다. 이제껏 썼던 모든 시나리오는 2시간 안에 이야기를 펼쳐야 한다는 강박감이 컸는데 이 소설은 그런 부담감 없이 재미있게 썼다.” 힘든 시기를 기록함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계기도 되었다. “카카오페이지로부터 연재 제안을 받고, 글들을 다시 꺼내 읽어보니 글을 썼던 당시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구나 싶었다. 마흔까지 살아온 나를 한번 정리하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기분도 들었다. 완성하기까지 몇년씩 걸리는 영화에 비해 소설은 결과물이 빨리 나온다는 매력도 있더라. 소설을 쓰고 싶은 욕구가 또 생기면 다음 소설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긴 하다.” 많은 독자들이 즐겨 읽은 만큼 <곰탕>은 현재 드라마 제작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 자세한 얘기를 공개할 수 없지만, 제작 소식이 조만간 들려올 듯하다.

<곰탕>

쓰나미가 몇 차례 일어난 2063년 부산은 안전한 윗동네와 쓰나미가 닥치면 언제 죽을지 모를 아랫동네로 나뉜다. 아랫동네에 사는 주인공 우환은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냈고, 성인이 된 뒤에는 식당 주방 보조로 살고 있다. 식당 사장은 그에게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서 곰탕 맛을 배워오라고 제안한다. 그는 이곳에서 사나, 시간여행을 하다가 죽으나 크게 다를 게 없다고 판단해 과거로 떠난다. 김영탁 감독 특유의 담백한 문체가 돋보이는 이 소설은 카카오페이지에선 챕터별로 연재됐고, 책으로는 ‘미래에서 온 살인자’와 ‘열두명이 사라진 밤’, 총 2권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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