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연구가 백종원씨가 출연하는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라는 방송을 좋아한다. 한편에 한 도시를 방문해 음식을 먹는 내용인데, 식재료에 대한 설명이나 음식에 관련된 유래 설명이 성실하고, 무엇보다도 시끄럽지 않다. 굳이 일행을 만들어 함께 가 “맛있다! 진짜 맛있어! 인생 최고의 맛이다! 존맛!”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보다 “와… 하나 더 시킬걸” 하고 후회하며 중얼거리는 게 더 맛있게 들린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프로의 매력 중 하나는 음악과 음향인데, 요즘 유행하는 ASMR(자율감각쾌락반응)과 맥이 닿는다. 즉,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소리들이 등장하는데, 도마에서 식재료 다듬는 소리, 뜨겁게 데운 웍에서 야채 익는 소리, 식재료를 채취하는 곳의 바람과 물소리 등이 자주 삽입되어 있다. 전순예 작가의 <강원도의 맛>은 ASMR을 글로 구현하는 듯한 책이다. 1945년 강원도 어두니골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어머니를 도와 6살부터 부엌일을 했다는 그녀는, 환갑이 되어 아이들이 마련해준 여행비로 등록한 신학교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강원도 음식이라면 옥수수와 감자, 각종 나물을 떠올리는 게 전부인 나는, <강원도의 맛>이 신기하다. 50년대 강원도에서 보낸 저자의 소녀 시절 이야기는 낯설기 그지없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소사 아저씨가 됫박으로 우유 가루를 배급해준다. 어렸던 전순예씨는 보자기를 가져가 우유 가루를 받아 잘 묶어 집으로 뛰어갔다. 뒤에서 낯선 남자 아들이 따라오면서 “이 간나”로 시작하는 말을 하며 우유 가루 보자기를 걷어찼단다. ‘아들’은 아이들이라는 뜻이고, ‘간나’는 여자를 욕할 때 쓰는 말이라는데, 정말 강원도 사투리가 북한 사투리와 닮았다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싶다. 어쨌든 이 우유 가루에는 물을 조금 붓고 잘 풀어서 밥솥 위에 올려 쪄서 떡처럼 만들면 간식으로 먹을 만했다고 한다. 이게 우유 가루떡이다.
강원도 음식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렵던 시절의 먹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울 촌사람에게는 낯설게만 보이는 온갖 식재료부터 방언까지가 여기저기에서 독특한 리듬감을 뽐낸다. 이 책에서 배운 단어들을 몇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다. 아는 단어가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시길(책에는 이런 단어들에 전부 뜻이 함께 실려 있다). 보솔산, 떡취, 마들마들, 갈포기, 꽁알, 덕, 잠박, 드럼, 이밥, 굼벙쇠, 흐들스럽게, 나물취, 꼬시네, 싱그름한, 은절, 개똥집, 무싯날, 맴썰나다, 참깨보생이, 엉그레, 꿀드리미, 꿀드리하다, 버물, 국수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