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수(유아인)는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이다. 파주 시골 마을에 있는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다. 정식 작가는 아니지만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를 좋아한다. 그는 배달하러 갔다가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서울 후암동에 자리한 좁은 원룸에 사는 해미는 내레이터 모델이다. 종수는 해미에게서 아프리카에 여행 간 동안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남자 벤(스티브 연)을 종수에게 소개한다. 종수는 해미와 가까워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해미가 자신보다 벤과 더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서 불편하고, 찜찜하며, 불안해한다. 20대 종수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의문투성이다. 자신보다 겨우 여섯 혹은 일곱살 많은 젊은 벤이 어째서 서래마을의 고급 빌라에 살고, 고급 외제차 포르셰를 몰고 다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종수가 벤을 ‘위대한 개츠비’라 표현한 것도 그래서다. 공무원에게 폭력을 휘둘러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감정도 복잡하다.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고 하지 않고 혐의를 인정한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런 아버지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 자신 때문에 죄책감도 든다. 해미나 벤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묘사된다. 해미가 고양이를 키우긴 하는지, 해미와 벤은 정말 연인 사이인지, 해미가 어린 시절 우물에 빠진 일화는 사실이긴 한지, 해미가 팬터마임을 왜 배우는지, 나중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등 여러 설정들이 비밀처럼 제시되는 까닭에 이야기가 미스터리 장르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에게 세상은 문제가 참 많은 것 같은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버닝>은 이창동 감독이 바라보는 요즘 20대 세대들의 삶의 ‘상황’(circumstance)인 것 같다. 서서히 불이 붙은 뒤 확 타버리는 영화 속 청춘의 풍경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