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어떤 일대일 만남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가, 세계의 수많은 여자 대표들과 어떻게 만날 셈이냐며 세간의 빈축을 샀다. 2002년 빌 클린턴과 대비되도록 신사적인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한 말 정도로 취급되었던 ‘펜스룰’(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규칙)은 2018년에는 당대 성차별주의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몇몇 특출난 여성이 남성 집단 사이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는 정도로는 변화한 시대를 반영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 여성이 정치에 진출하던 초기에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 중심적인 대의제 내에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거라고 주목받았다. 여성은 더 부드럽고, 청렴하고, 헌신적일 거라고 기대를 모았다.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 연대의 바깥에서 새로운 기대주가 될 만큼 예외적이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가족사업의 일환으로 정치에 뛰어들거나, 정당 내에서 기존의 계파 안으로 들어가는 식 말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여성 정치인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남성 연대의 바깥에 있다는 것은 곧 그만큼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정치학자 드루데 달레루프는 1988년 여성이 상징적 존재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집단 내에 일정 정도 이상의 수는 확보되어야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임계수치’(critical mass)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임계수치가 확보되면 그때부터 소수의 대표들이 상징적이고 예외적인 존재가 되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남성 정치인들의 네트워크에 집중된 자원이 약화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자원을 조직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이를 통해 권력관계가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할당제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도입해온 핀란드의 경우를 보자. 1907년 첫 민주 선거부터 10% 여성할당제를 실시한 핀란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한 국가이자 세계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는 곳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핀란드 대통령으로 일한 타르야 할로넨은 청렴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인기를 끌었고,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정책이 모두를 위한 정책이라는 점을 성공적으로 설득시켰다. 퇴임 시 할로넨의 지지율은 80%에 달했고, 국민들은 그녀에게 “12년이나 일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퇴임을 함께 축하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떨까.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공천과 경선을 마치고 후보를 확정하고 있다. ‘미투’(#MeToo)가 정치권에서도 주요 이슈였기 때문에 당연히 이번에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여당은 광역자치단체장 중 단 한명의 여자 후보도 내지 않았다. 시대는 달라졌는데 아직 뒤따라오지 못한 것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