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주성치 / 출연 주성치, 막문위, 장백지, 오맹달 / 제작연도 1999년
주성치의 ‘비디오’를 모으던 1999년은 ‘세기말’과 ‘밀레니엄’이라는 ‘근거없는 불안’과 ‘불안한 희망’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시기였다. 나는 이름도 그럴싸한 밀레니엄을 선택했고 마치 천지개벽을 기다리는 궁색한 맹신도처럼 2000년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동시에 Y2K에러로 은행전산망이 초기화되면 지급 불능의 카드값이 해결되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당시 나의 영화 취향도 궁색하긴 마찬가지였다. 허름한 모텔에 비치된 B급 비디오를 통해 알게 된 <희극지왕>의 줄거리는 지면이 아까울 정도로 단순하다. 자신이 명배우이자 명연출가라는 그릇된 신념을 가진 고독한 삼류 배우 주성치가 ‘순전히 운에 의해서’ 잘되는가 싶더니 결국, 자신을 사모했던 술집 여인에게 ‘평생 먹여살리겠다’고 말하고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택한다. 끝. 당시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두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주성치표 코미디’라고 썼지만 나는 ‘고독과 운(運) 사이를 버티는 한 시절의 이야기’라고 규정한다. 나는 인간과 군상이 가지는 고독을 어떻게 그려내는지를 두고 명작영화인지 아닌지를 가리곤 했는데 이 영화를 볼 당시 나는 지독히도 운이 없었고, 지루할 만큼 고독했다. 둘은 항상 세트로 존재했기 때문에 둘 중 뭐가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서 기왕이면 그 둘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동정을 구걸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익히는 동안, 옆에서 웃고 떠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좀 덜 힘들지 않을까. <희극지왕>으로 알게 된 주성치가 콧물과 구타와 말장난을 섞어가며 너스레를 떨 때까지만 해도, 그는 웃기지 말라며 ‘운과 운 사이의 고독은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것도 아주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이다. 더 힘들고 덜 힘들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차피 운은 공평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고, 인생에서 감내해야 할 고독의 양은 정해져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주성치는 감독으로서 마치 운을 시험하듯 첫 감독작으로 <희극지왕>을 연출할 때 배우들에게 애드리브를 용납하지 않는 계산된 정극 수준의 코미디 연기를 지시했다고 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엔지 컷에서 배우들은 다시 현실의 여유 있는 홍콩 스타로 돌아가 서로 웃고 떠들며 ‘결국 이것이 나의 운이다, 너는 이제 어쩔 테냐?’ 하고 묻는, 희비극의 정점을 선사한다. 그렇게 주성치는 성공했고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고독 속에서 맴돌았지만, <희극지왕>의 오맹달, 장백지, 막문위, 전계문, 임자총 등 ‘주성치 군단’이라고 하기엔 심하게 반짝거리는 이들이 <소림축구>(2001)에서 다시 만나 동창회처럼 까부는 모습을 보면 인생은 멀리서 본다고 희극이 되는 것도, 가까이서 본다고 비극이 되는 것도 아니란 걸 느끼게 된다. 망가지지 않을 만큼만 최선을 다하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담담히 운을 기다리는 것임을. 고독과 운이라는 불가항력의 조건을 핑계삼는 것은 얼마나 편안한 해결법인가. 우리에겐 <굿 윌 헌팅>(1997)의 명대사, “네 잘못이 아니야”를 담담히 건네주고 싶은 시절이 있다. 너무 젊어 고생스러운 청춘에도, 너무 잘 알게 되어 서러운 중년에도, 하물며 <희극지왕> 포스터를 표절한 <투사부일체>(2005)의 디자이너에게도.
조성호 시각특수효과(VFX) 업체 매크로그래프 본부장. 3D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제작하다가 주성치 감독의 <서유항마전>(2013), <미인어>(2016)의 주요 VFX를 제작한 매크로그래프에서 ‘운 좋게’ VR 기획과 총감독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