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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스티븐 연 - 느낌으로 통하다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8-05-08

스티븐 연은 완벽한 한국인이다. 그러나 완벽히 알 수 없는 한국인이다.” 이창동 감독은 <버닝>의 주연배우 스티븐 연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이는 영화 속 벤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설명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를 사랑하고 이탈리아 요리를 즐기며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읽는 남자. <버닝>의 벤은 한국인이라는 설명이 없었다면 국적을 가늠할 수 없었을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재미교포 배우 스티븐 연의 존재가 이 인물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 TV시리즈 <워킹 데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2017) 등에 출연한 글로벌 스타로서의 면모는 벤에게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더불어 스티븐 연이 30대가 되어 비로소 얻게 된 여유는 <버닝>에서 모든 것을 관망하고 즐길 줄 아는 벤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에 출연할 준비가 되었을 때 <버닝>이 나를 찾아왔다”고 스티븐 연은 말했다. 그 또한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일 것이다.

-<옥자>에 이어 2년 연속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옥자>는 출연진이 워낙 많고 영화의 규모도 커서 내가 잘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반면 <버닝>은 이창동 감독님과 나를 포함한 배우 세명이 한팀이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아직은 실감이 잘 안 난다. 칸에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웃음)

-<버닝>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

=런던에 머물 때 봉준호 감독님의 전화를 받았다. 이창동 감독님이 나를 만났으면 한다고 하시더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은 날 밤 <버닝>의 원작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읽었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필링’(feeling)이 핵심인 작품이었다고 할까. 마침 운명처럼 한국에서의 다른 일정이 생겼고, 그 기회를 빌려 이창동 감독님과 3일 내내 만나 <버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나 작품을 보는 관점에서 감독님과 나의 주파수가 일치한다고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다.

-벤이라는 인물에 대한 당신의 첫인상이 궁금하다.

=벤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층위의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이다. 굉장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모든 걸 바라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힘과 자유, 부를 가진 인물이기에 어떤 일을 행할 때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잘 안다. 처음 벤에 대해 들었을 때에는 막연히 그가 교포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연을 결정하고 한국에 온 뒤에야 그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웃음)

-모든 대사가 한국말인데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예전에 IT전시장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여섯장 분량의 글을 달달 외워야 했는데, <버닝>의 한국어 대사를 준비하며 그때 생각이 났다. 여섯장도 외웠는데 뭔들 못 외울까 싶더라. (웃음) 감독님과 동료 배우분들이 많이 도와줬다. 한국에서 촬영하는 동안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 한국어 대사로만 연기한 경험이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균형’이다. 당신은 어떤가.

=밸런스는 중요하다. 예전에 사촌이 “모든 일은 적당히 해야 하고, 적당한 일 또한 적당히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의 말에 동의한다. 벤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30대가 되어 아기가 생기고 가정을 이루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했던 그 많은 걱정이 30대가 되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더라.

-7년간 함께한 TV시리즈 <워킹 데드>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끝을 내야 할 시기에 마무리를 지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워킹 데드>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워킹 데드>의 성공을 빌미로 커리어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남자, 아빠, 동양 사람, 미국인, <워킹 데드>에 출연한 배우…. 나 자신을 좁은 의미 속에 가둬두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한국영화에 출연할 계획인가.

=알 수 없다. 한국말이 서투니 드라마에 출연하기는 힘들 것 같고, 전형적인 교포 역할은 흥미가 덜할 것 같다. 이창동, 봉준호 감독님 같은 연출자를 만난건 나에게 정말로 행운이었다. 두분은 배우에게 원하는 게 있음에도 배우들이 직접 그것을 찾을 수 있도록 자유와 여유를 허하는 분들이었다. 좋은 기회가 생기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한국 작품에 출연할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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