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제주 인권회의를 시작으로 2000년 9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채의진은 그중에서 문경학살사건의 유가족으로 평생을 문제 해결에 매달려왔다. 문경사건은 또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시작된 뒤 가장 먼저 조사 개시되고 충실한 조사를 거쳐 진상 규명에 보상까지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그러면 해피엔딩인가. 정권이 바뀌고, 대법원 대법관의 구성이 바뀌고,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보고서를 부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채의진을 비롯한 문경 석달마을 사건 유가족들은 보상금의 일부를 돌려주게 되었다. <빨간 베레모: 채의진 평전>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고 채의진이 1949년 죽음의 현장에서 목숨을 구하면서부터 2016년 사망하기까지의 시간을 가까이서 따라잡는 구성을 하고 있다. 죄 없이 죽은 어머니와 형, 사촌동생을 위해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국가와 싸운 과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피해자 입장에서의 싸움의 기록인 셈이다.
<고기로 태어나서: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의 한승태 작가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노동에세이’라는 장르에 특장점을 보인 바 있었다. 그가 일터로 삼는 곳은 꽃게잡이 배, 자동차 부품 공장과 돼지 농장 등이었다. 그 경험이 이번 책에서 이어진다. 닭, 돼지, 개를 식용으로 다루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식재료로 태어난 동물들이 살아 있을 때 어떤 일을 겪는지를, 더불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승태 작가의 장기는 ‘이 모든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장하지 않는 문장에 있다. 고개를 돌리지 못할 정도로 좁은 닭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의 몸을 쪼는 닭들이 달걀을 낳는 풍경을 떠올리는 일, 음식쓰레기를 처리해 개에게 먹이고 그 분뇨가 개장 아래 땅바닥에 쌓이게 아예 개장을 공중에 매달아놓는 일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독자들이 채식주의를 고민하는 시늉을 할 때, 그곳의 노동자들이 이가 성치 못해 시간을 끌며 식사하는 광경 속에 있던 자기 자신을 그저 드러내 보인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비참함은 곧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인간이 경험하는 어려움과도 통한다는 사실을. 돈을 번다는 말이 당연히 이런 광경의 일부가 된다는 의미인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인간의 조건2>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