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로 출발해 시나리오 작가를 거쳐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던 육상효 감독이 데뷔작 <아이언 팜>을 들고 돌아왔다. 미국 현지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아이언 팜>은 장르의 문법에 충실한 로맨틱 코미디다. 아이언 팜(차인표)은 5년 전 자신을 버리고 한국을 떠난 여자친구 지니(김윤진)를 찾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건너온 한국 청년이다. 그는 한국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우기 위해 한국이름을 버리고 ‘아이언 팜(철의 손)’이라 자칭하며 오로지 영어로만 말한다. 그가 미국에 들고 온 건 전기밥솥이다. ‘철사장’이라는 쿵푸식 외공 단련법에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는 그는 뜨거운 모래 대신 끓고 있는 전기밥솥의 밥알 속으로 당수를 찔러넣으며 철사장을 단련한다. 셈이 빠른 듯 하면서도 인정에 잘 끌리는 한국계 택시운전사 동석(박광정)의 도움으로 아이언은 지니를 찾지만, 그에겐 이미 애드머럴(찰리 천)이란 새 남자친구가 있다. 술집에서 ‘소주’ 바텐더로 일하는 지니는 칵테일 경연대회에 입상해 소주바를 여는 게 꿈이다. 사업가인 애드머럴은 돈, 영주권, 인맥 등 지니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언은 지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뿐 아니라, 이민국의 추적을 받는 등 제 몸 하나도 추스리기 어려운 신세다. <아이언 팜>은 한 가지 꿈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인물들이 웃음을 빚어내는 전통적인 코미디다. 이 인물들의 시선은 일쑤 어긋나 있다. 아이언 팜은 오로지 첫사랑 지니만 바라보지만, 지니의 눈길은 성공을 향해 고정돼 있고, 그 길목에 애드머럴이 서 있다. 남자는 사랑을 좇고 여자는 성공의 조건을 좇는다는 점에서 <아이언 팜>의 캐릭터들은 미국 코미디의 대부 빌리 와일더의 인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첫사랑을 못 잊은 ‘철의 순정’ 아이언이 이국땅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 위로는,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 하나만으로 미국땅을 헤집고 다닌 육 감독의 ‘영화에 대한 순정’이 오버랩되어 떠오른다. 그의 다음 작업에선 ‘순정’ 이상의 성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19일 개봉.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