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쉴 때였다. 모임에서 나를 소개하다 멈칫했다. 나를 기자라고 소개해도 괜찮은 걸까? 이름 앞에 붙던 소속이 사라지자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수많은 ‘나’들은 이렇듯 어딘가에 소속되어 누군가의 무엇으로 호명된다. 엄마의 딸, 어느 초등학교 몇 학년 몇반, 어느 대학의 학생, 회사의 모 대리 등등, 관계맺음으로써 생기는 이름이고 어디에 소속되면서 부여받는 직함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나는 누구일까. <후아유>는 영국 남자와 결혼해 두딸을 낳아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 저자의 이야기이며, 그가 활동가로서 북한이주민, 결혼이주 여성을 연구하며 겪었던 체험과 고민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이 책을 단순히 다문화 가정과 소수자들에 대한 성찰이 빛난다, 라고 정리해도 좋겠지만 더 놀라운 지점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자기반성적인 사례들이다. 서울대 출신의 연구자이자 다정한 친구들과 가족에 둘러싸여 살았던 저자는 영국에서 살 때 그동안 나를 설명해주던 모든 것들이 쓸모없어짐을 확인했다. 아무리 주의해도 우리는 사회에서 차별을 받거나 행하는 역할을 하게 되며 손쉬운 구별을 위해 만든 ‘이름짓기’가 곧 차별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가 편의를 위해 규정한 다문화라는 이름에도 비판적이다. 아이들이 “나는 한국인이야 영국인이야?”라고 물을 때, “너는 유라시아인이야”라고 답해줘야지, 너는 국가가 아니라 더 큰 공동체 속에 있다고 설명해줘야지 생각했던 저자에게 둘째아이가 먼저 “나 알아, 나 다문화야!”라고 학교에서 배운 대로 답했다는 대목에서도 그러한 비판적 시각이 드러난다. 너를 어떻게 대해줬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다문화 아이는 이렇게 답한다. “평범하게요, 나는 특별하지 않아요. 자기들도 외국에 가면 외국인인데, 왜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가요.” 이 책을 더 많은 어른이 읽었으면 좋겠다. 차별하고 차별받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평범한 어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낯선 것에 이름 붙이기
누구나 낯선 것을 만나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을 참고해서 비교하며 파악하려고 한다. 새로운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에 잘 맞으면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잘 안맞으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내 생각을 바꾸든가, 새로운 정보를 버리든가. (중략) 나는 이 새로운 ‘것’이 사물이나 정보가 아니라 ‘사람’일 때, 혹은 ‘사람과 관련된 것’일 때 좀더 신중하고, 좀더 성찰하는 태도를 갖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내가 낯선 이를 볼 때 그를 좀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그래야, 낯선 이가 나를 볼 때도 내가 온전히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다.(57∼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