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룸’이란 인터넷 방송이 있다. 2010년 런던에서 시작된 디제잉 방송으로, 유튜브 열풍을 타고 이젠 디제이 컬처를 넘어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신뢰받는 트렌드세터로 성장했다. 신인들은 여기서 음악을 튼 걸 자랑으로 여기고, 잘만 하면 커리어 전환점도 만들어진다.
이곳에서 지난 3월 16일 한국인 디제이 페기 구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지난해부터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그녀와 다양한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영상을 업로드하며 보일러 룸은 이런 소개를 덧붙였다. “최근 일렉트로닉 신에서 페기 구만큼 급상승한 아티스트를 찾기 힘들다.”
클럽 신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잡지 <믹스맥>도 페기 구의 최근 상승세를 올해 3월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한국인이 <믹스맥> 커버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믹스맥>은 2017년 ‘올해의 디제이’ 연말 결산에서도 페기 구를 5위로 꼽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깐깐한 웹진 <피치포크>는 페기 구의 새 앨범 《Once》에 평점 7.7(10점 만점)을 줬고, 일렉트로닉 마니아들의 허브 ‘레지던트 어드바이저’는 《Once》에 평점 4.3(5점 만점)의 찬사를 보냈다. 은 그중에서도 화제를 끌고 있는 곡이다. 부제가 ‘잊게 하네’(Itgehane)인 가사 전부가 한국말로 된 하우스다. 중간 내레이션에선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떠오르는 톤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사”를 한탄하기도 한다. ‘세상사’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가 먼 유럽의 언더그라운드를 흔들고 있다니, 유리벽이 돌파되는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페기 구는 한국 디제이들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영역으로 경쾌하게 한발을 내딛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