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과 관련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절은 2000년대 초·중반이다. 이때의 힙합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리즈’ 시절에 들었던 음악을 최고로 친다. 그러나 이 시절의 힙합 음악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힙합과 팝이 균형을 이루며 섞였던 시기,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힘 있고 찬란했던 시기 등의 구실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또 이 시절의 힙합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여자들은 아름답다. 지금보다 자연스러운 미를 지녔다.
룬은 이 시절에 활약한 래퍼다.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퍼프 대디의 레이블 ‘배드보이’ 소속이었고, 자기 이름과 똑같은 제목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당시 퍼프 대디는 귀에 달라붙는 팝-랩 트랙을 여러 개 만들어 히트시켰는데, 그 대부분의 노래에는 룬의 랩이 담겨 있다. <Down For Me>도 그중 하나다. 사실 이 노래는 보증된 공식을 따르고 있다. 퍼프 대디와 라이언 레슬리가 프로듀싱하고 마리오 와이넌스가 보컬을 보탰기 때문이다. 덕분에 비트는 새콤하고 멜로디는 따스하며 랩은 오밀조밀 재미있었다. 그리고 룬은 요즘 말로 하면 ‘훈남’, 그 자체였다. 이 노래는 내가 가장 아끼는 팝-랩이고, 여전히 뮤직비디오를 거실에 종종 틀어놓는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그 후 룬은 래퍼를 은퇴하고 모슬렘이 됐다. 음악산업에서 항상 갈구했던 마음의 평화를 비로소 찾았다고 말하면서. 미안하지만 반전이 하나 더 남았다. 그는 현재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헤로인 소지 혐의로 벨기에에서 체포돼 13년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뭐지 이게. 왜 글을 이렇게 끝내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