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무기회사가 이탈리아 피렌체 공장 폐쇄를 결정한다. 미국 본사가 내린 공장 폐쇄 결정을 공장장과 유럽 지역 본부장, 일부 팀장들만이 알고 있다. 공장 직원들의 물리적 저항을 최소화하고, 노조와의 마찰을 줄이며 순조롭게 공장을 폐쇄시키기 위해 비밀스러운 계획이 실행되는데, 이름하여 ‘마카로니 프로젝트’다. 수천명이 직장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 회사가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계획대로 해고를 처리해 회사의 이미지 실추를 최소화하는 것뿐이다. 기업의 대량 해고 문제를 소설로 그릴 때 회사를 악이자 가해자로, 노동자를 선한 피해자로 단순화하기 쉬운데 <마카로니 프로젝트>는 생존 앞에서는 실익을 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양면성을 실감나게 그린다. 복잡한 신자유주의의 세계 안에서 흑백의 논리는 적용되지 않는다. 직장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나와 내 가족의 상황을 상위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고를 통보하는 인사팀장이나 노동자들의 폭력적인 상황에 대비해 도망칠 루트를 살피는 공장장, 이들 모두 시스템 안에서 움직일 뿐이며 이들을 ‘회사’라고 할 순 없다. 아비규환 속에서는 오직 ‘회사’라는 시스템만이 승리한다.
어제까지 서로의 대소사를 챙기는 동료였던 노동자들이 해고 앞에서는 균열되고 쪼개지며 이탈하다가 이내 함락된다. 그 과정이 너무 세세하여 르포르타주처럼 읽힐 지경이다. 작가가 한국의 어느 공장으로 특정하지 않고, 이탈리아를 무대로 하고 인물들 역시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미국인 등으로 그린 것은 이것이 지금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임을 말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기업의 조직도처럼 구성된 소설의 뒷부분에는 공장 주변에서 중국 식당을 운영하던 부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탈리아에서 중국 식당을 열어 장사에 수완을 보였던 이 부부 역시 공장 폐쇄 후 식당 문을 닫게 된다. 공장 직원을 상대로 한 장사가 아니니 타격이 없을 거라 자신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공장이 폐쇄된다는 것은 지역 상권이 붕괴되고 협력 업체가 무너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연쇄적인 불행 앞에서 안전지대란 없다. 한국GM의 군산공장 관련 뉴스와 더불어 너무나 아프게 읽히는 소설이다.
붕괴의 예감
안토니오가 고개를 돌려보니 공장장과 생산팀장 그리고 자신의 팀장이 후문을 향해 급히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모든 직원은 보도로 지정되지 않은 곳을 통행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출하장을 트럭이 수시로 드나들어 위험한 곳에서 달리는 행동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두달 전 한 직원이 출하 일정을 맞추기 위해 제품을 가지고 뛰다가 지게차에 부딪혀 넘어지면서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공장장과 생산팀장은 그 직원의 잘못으로 판정하여 유급휴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이력을 지닌 자들이 마치 사냥꾼을 피해 달아나는 토끼들처럼 혼이 절반쯤 나간 모습으로 황급하게 뛰어가고 있으니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