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코널리의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블랙 에코>에서, 해리 보슈는 베트남전 참전 당시 겪었던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함께 베트남에서 ‘땅굴쥐’(Tunnel Rats) 부대에 복무했던 전우의 시체와 맞닥뜨린다. 베트콩이 파놓은 수많은 땅굴에 들어가 탐색과 폭탄 설치 등 토벌작전을 맡았던 군인들을 그렇게 불렀는데, 땅굴에서 함정에 빠지거나 덫에 걸리거나 죽창에 찔리는 일이 흔할 정도로 그 임무는 위험천만이었다. 당시 베트콩들의 은신처로 매우 중요했던 그 땅굴들은 하나같이 입구가 작았는데, 그러다보니 작은 체구를 가진 사람들이 뽑힐 수밖에 없었기에 수많은 히스패닉 군인들이 땅굴쥐 부대원으로 활약했다.
베트남전 당시 히스패닉 군인들에 대한 얘기를 꺼낸 이유는,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 거의 마지막 법원 장면 때문이다. 법원에 간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한 정부측 젊은 여성 직원의 안내로 줄을 서지 않고 현장으로 향하는데, 그 직원은 정부측에 속해 있으면서도 “전 여사님이 이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우리 오빠도 아직 베트남에 있거든요”라고 덧붙인다. 당시 베트남전이 후반부로 치달을 때 무수히 많은 흑인, 히스패닉 군인들이 베트남으로 향했다. 군인이 된다는 것은 미국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눈물겹도록 목숨을 걸고서라도 인정받고 살아남고자 했다. 그렇게 흑인, 히스패닉 군인들이 베트남전에서 용맹을 떨쳤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백인 남자 군인들보다 더 위험한 임무에 투입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를 합치면 베트남에 파병된 전체 군인의 10% 정도지만 사망자의 20%는 바로 그들이었다. 훨씬 더 많이 죽었던 것이다. 베트남전은 TV로 중계된 사상 최초의 전쟁이었지만, 대중은 <더 포스트>에 드러나는 것처럼 그 실체를 잘 알지 못했다. 스필버그는 영화를 통해 미국 근현대사를 기록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남북전쟁 시기를 다룬 <링컨>을 비롯해 <워 호스>를 통해 1차 세계대전을 다뤘고, <태양의 제국>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통해 특히 2차 세계대전을 많이 다뤘다. <스파이 브릿지> 또한 동서 냉전이 극심했던 195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동년배 감독들과 비교하자면 베트남전에 무심했다. 심지어 1969년이 배경인 <캐치 미 이프 유 캔>, 1972년 뮌헨올림픽을 다룬 <뮌헨> 등 시기적으로 보면 베트남전(1960∼75년)과 시간적 배경이 겹쳐지는 영화를 두번이나 만들었지만 베트남에 대한 얘기는 딱히 없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스필버그가 베트남전의 기억을 일부러 피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더 포스트>는 스필버그의 첫 번째 베트남전 영화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오빠를 베트남으로 떠난 보낸 정부측 히스패닉 젊은 여성 직원까지 등장시켜,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다룬 또 다른 영화 <대통령의 음모>에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았던 캐서린 그레이엄의 존재감을 포함하여, 보다 스펙트럼이 넓고 디테일이 풍부한 페미니즘 영화로 완성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에서 백인 남자 선배 직원에게 야단맞던 그 직원이 정부 안에서 잘 승진하며 버텼을지, 또 그 오빠는 베트남에서 살아서 돌아왔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더 찾아봤더니 1968년 설리 치좀이 최초의 흑인 여성 하원의원으로 등장했던 것에 비해, 히스패닉 여성으로는 2009년에 와서야 소니아 소토마요르가 최초의 히스패닉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됐고(당연히 오바마 대통령의 임명), 2016년에는 캐서린 코테즈 매스토가 첫번째 히스패닉 여성 상원의원이 됐다. 그처럼 그 직원은 이후 얼마나 더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고 살아야 했을까. 아무튼 이번호는 <더 포스트>를 포함한 아카데미 특집호라 할 수 있다. 해마다 <씨네21>의 수상 예측이 거의 90% 맞았는데, 과연 이번에는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