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조직의 대표는 대부분 남성이다. 무슨무슨 위원들도 대부분 남성이다. 반면 실무진은 다수가 여성이다. 리더들은 모든 게 세팅된 자리에 등장해서 회의를 주도하고 업무 지시를 하고 능력과 개성을 한껏 발휘하고 퇴장한다.
의전이란 외교 행사에서 외국의 국가원수나 고위급 인사에게 제공하는 예법을 뜻한다. 하지만 한국 안의 거의 모든 조직에는 고위 간부들을 위한 의전이 존재한다. 간부들에게는 교통수단, 안락한 공간, 그외의 편의들이 특혜로 제공된다. 물론 한국에서 의전의 대상은 대부분 남성이다. 뒤풀이 자리도 있다. 이 자리에 누군가는 먼저 도착하고 누군가는 나중에 도착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도착하는 이들은 일을 마치고 뒷정리를 한 후에야 뒤풀이 자리에 오기 때문이다. 물론 미리 자리를 예약하고 메뉴를 봐둔 이들도 바로 뒷정리를 하는 사람들이다.
뒤풀이 자리 또한 소수의 남성과 다수의 여성으로 분할돼 있다. 중앙은 대부분 선배나 원로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에게 후배들이 인사를 하러 온다. 깍듯하게 술을 따른다. 그러면 격려와 덕담이 건네진다. 마치 후한 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번은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를 엿본 적이 있다. 남성 직원들이 외치고 있었다. “사랑해요, 부장님! 우유 빛깔 부장님!” 부장님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남성 직원들은 더 힘차게 구호를 외쳐댔다. 이때 여성 직원들은 구호를 따라 부르면서 동시에 고기를 굽고 있었다. 고기가 타면 안 되니까. 한 사람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때 누군가는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전체에 대한 관심을 모두 유지해야 한다.
지금까지 묘사된 장면들은 한국의 조직 사회에선 지극히 평범하고 흔하다.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누구나 이 장면들 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다. 이 장면을 통과하면서 한 사람의 사회화가 진행되고 직업적인 성취가 이루어진다. 당연히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성장해간다. 예전 같으면 도대체 이 장면들이 뭐가 문제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바로 이 장면들이 문제적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비인격적 규칙이 지배하는 합리적 조직인 관료제가 근대사회를 지배할 것이며 그 부작용으로 근대사회는 사람 냄새가 결여된 철창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론이 한국 사회에 간단히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한국의 조직 내부엔 비인격적 규칙 외에도 다른 규범과 규칙이 있다. 가부장주의, 권위주의, 젠더불평등, 연고주의 등등. 때로는 공과 사를 나누는 비인격적 규칙보다 공과 사를 뒤섞고 특정 인격체를 중심으로 한 규칙과 규범이 우선한다. 이때 한국의 조직은 관료제라는 합리적 기계가 아니라 차라리 남성 중심의 패거리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패거리의 작동원칙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거침없이 자기네 맘대로. 둘째, 자기네한테 좋은 게 좋은 거. 셋째, 팔은 무조건 안으로. 한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나는 차라리 ‘표리부동’이 좋아요. 제발 자기 안의 추한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막스 베버의 표현대로 한국의 조직이 철창이 되었다면, 그 안에는 영혼 없는 전문가가 살지 않는다. 그 안에는 욕망 덩어리 패거리들이 산다. 한국에서 사회화 과정, 직업적 성취, 공동체와의 관계 형성은 이 패거리들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