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으레 하는 일이 있다. 리스트 만들기다. 2017년을 다 지낸 후에도 나는 조촐한 리스트를 만들었다. ‘한해 동안 가장 즐겨들은 노래 10곡.’ 그중에는 호림의 노래도 있었다. 실제로 난 호림의 <TEMP-TON>을 즐겨듣는다. 잘 때도 듣고 커피를 내릴 때도 들었으며 사랑을 나눌 때도 들었다. 호림은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흑인음악 보컬리스트다. 처음 듣는 순간 ‘진짜’라는 걸 알았고 더는 가짜들에 눈물짓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다. 재능도 다양하다. 호림이 최근 발표한 곡은 <MOVIN’>이다. 이 노래에서 호림은 마치 ‘디안젤로’처럼 ‘크루닝’(crooning)한다. 또 이 노래는 호림이 ‘힙합’의 팬임을 드러낸다. 드럼 비트, 케이알에스 원과 라킴의 익숙한 프레이즈(어떤 자연스런 한 단락의 멜로디 라인), 무엇보다 뮤직비디오가 그렇다. 뮤직비디오 속의 패션, 미장센, 카메라 기법, 그 안의 공기까지 모두 ‘멋’ 그 자체다. 릴우지버트나 릴야티의 멋과는 다르지만 오래된 힙합 뮤직비디오에서 자주 느꼈던 멋이 살아 있다. 호림을 보며 난 보컬리스트라는 단어의 함정을 떠올린다. 흔히 ‘노래’를 부르면 힙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많은 R&B 보컬리스트가 힙합의 ‘옆’에는 있어도 힙합 속으로 들어가진 않는다. 하지만 호림은 랩을 하진 않지만 힙합을 온몸에 덕지덕지 묻힌 보컬리스트다. ‘R&B Thug’ 모드일 때의 알켈리처럼, 디디의 프로듀싱 위에서 노래 부르던 메리 제이 블라이지처럼, 드레드를 따고 두건을 두른 뒤 무대에 나왔던 커리어 초기의 휘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