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고 한달도 지나지 않아 끔찍한 뉴스가 연이어 들려왔다. 단순히 끔찍하다고 표현하기엔 지나치게 황당하고 어이없어서 잘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이기도 했다. 지난 1월 14일, 인천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던 여직원이 화장실로 따라온 괴한에게 흉기로 수차례 폭행당해 큰 부상을 입었다. 5일 후 잡힌 범인은 전과가 있는 40대 남성으로, 피해자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서” 혼내주려 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이어 17일에는 문경 시내 한 아파트에서 한 여성이 함께 살던 오빠에게 흉기로 살해당했다. 대학을 중퇴한 피해자와 두살 터울의 오빠는 취업하지 못해 힘든 상황에서 대학생인 여동생이 자신을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리고 19일에는 천안의 한 주택에서 잠자던 30대 딸을 11살 손자 앞에서 둔기로 때려 살해한 70대 친부가 징역 20년을 구형받았다. 그는 음식점 직원으로 근무하는 이혼한 딸이 평소 밥을 잘 챙겨주지 않는 등 “아버지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여관 업주가 성매매 여성을 불러주지 않아 화가 난 50대 남성이 여관에 불을 지른 참변이 막 보도되었다. 홧김에 그 남자가 저지른 일로 방학을 맞아 서울에 놀러온 세 모녀를 포함한 5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모두 하나같이 단지 사실을 기술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고통스럽고 참담한 사건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인 점은 이 각각의 특수하고 개별적인 범행들이 놀라울 만큼 같은 맥락의 동기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가해 남성들은 모두 상대 여성들이 자신을 비웃고 무시하고 대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화가 났다고 했다. 그런 이유가 누군가를 살해할 수도 있는 동기라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모멸감과 수치심이 인간을 얼마나 병들게 할 수 있는지 모르는 바 아니고, 때론 오랜 기간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살기 위해 가해자를 공격한 경우를 지지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경우다. 대체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일면식도 없는 편의점 직원을 쫓아가 폭행하고, 함께 사는 여동생을 아령으로 내리치고, 자신을 부양하는 유일한 딸을 어린 손자가 보는 앞에서 살해하는가. 그들이 정말로 참을 수 없었던 건 자신이 늘 무시하고 억압하던 약자가 역으로 자신을 모욕했다고 느낀 탓은 아닐까. 상대가 여성이 아니었어도 비뚤어진 분노와 충동을 실현하려 했을까. 아니 애초에 생겨나기나 했을까.
한편 범죄자들이 밝힌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변명을 ‘우발적’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며 문제는 결국 피해자에게 있었다는 인상을 주는 보도 방식에는 왜 변함이 없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기사들은 마치 어떤 미친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무시당했다고 느끼고 분노해 심지어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고작 이 정도의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 이 글에 화가 나서 기습 공격을 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과 공포가 조금씩 싹트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나에 앞서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 수 있나를 고민하는 새해다. 어쨌든 참지 못해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더이상은 묵묵히 참아내며 살아가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