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나 경찰을 드물게 일 때문에 만나게 되면,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수사권 조정처럼 양 조직이 전면으로 대립하는 이슈를 둔 경우는, 검사 말을 듣느냐 경찰 말을 듣느냐에 따라 생각이 매번 바뀐 적도 있는데, 상대에 불리하고 자기쪽에 유리하면서도 극적인 예를 잘들 찾아오는지 놀라울 정도다. 18년차 검사인 김웅의 <검사내전>은 검사가 글을 재미있게 쓴다는 말의 뜻을 알게 해준다. 법의 한계와 사법제도 개혁에 대한 의견을 조심스레 개진하는 4장 ‘법의 본질’을 뺀 250여쪽의 분량은 한국의 거의 모든 유형의 범죄에 대한 검사 입장에서의 경험담이다.
<검사내전>에서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1장 ‘사기 공화국 풍경’이다. 사기 범죄는 밑천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세금도 내지 않으며, 잘 잡히지도 않고, 잡혀도 대부분 쉽게 풀려난다. 한해 24만건의 사기 사건이 발생하고,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른다. 여기에 대한 김웅의 생각은 (매정하게도) 각자가 알아서 피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1장을 읽다보면 그게 만만한 주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기의 공식이 비교적 단순하고 허접하다는 것은 18년차 검사의 입장이고, 실제 사기꾼들의 활약상을 읽어보면 일단 ‘걸리면 끝’이라는 게 맞는 듯하다. 신용도 좋도 인상은 더 좋은 할머니 사기꾼은 검사들의 일하는 패턴까지 꿰고 있고, 울버린급으로 많은 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한 보험사기꾼이 있는가 하면, 보험사기꾼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고 검사의 수사에는 그 윗선에 줄을대는 것으로 빠져나가는 병원장이 있다. 사기 범죄에 말려드는 심리를 설명하는 부분 역시 흥미로운데, 이전 정권의 비자금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면서 사기꾼이 접근할 때를 설명하며,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경계하지만(‘어차피 돈을 안 줄 거니까 들어나보자’) 설명을 듣다보면 ‘진짜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남들이 모르는 비밀에 접근한다는 우월감)는 것이다. 구권 화폐사기 같은 고전 수법도 있지만, 모든 사기꾼은 그 시점에 자주 언급되는 시사이슈를 잘 활용한다. 2장의 ‘산도박장 박 여사의 삼등열차’도 흥미진진하다.
“재판정에 나가보면 피해자의 반신불수보다 피고인의 치질이 더 중병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 제발 범죄 피해를 당하지 마시라. 피해자도 헌법상 기본권이 보장된 우리나라 국민이지만 실제로는 2등 국민이다.” 각자 알아서 피하라는 말에 숨은 뜻은, 범죄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대책이 한참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세번 웃기고 한번 울리면 흥행에 성공한다는 한국영화 흥행 공식이라는 게 있었는데, 이 책은 세번 웃기고 한번 머리가 복잡하다. 그리고 머리가 복잡한 부분이야말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