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에게 세상이 자주 붙이는 딱지가 있다. ‘피해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강의를 하다보면 이런 질문도 곧잘 들어온다. “페미니즘을 알고는 싶은데 피해 의식만 잔뜩 생길까봐 겁이 나기도 해요. 피해 의식을 갖지 않고 페미니스트가 될 방법이 있나요?” 무리도 아니다.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 사회를 다시 둘러보는 시각을 갖게 되면 그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냥 지나쳤던 부분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런 새로운 앎은 환희만 주지 않는다. 고통이 뒤따른다. “페미니스트가 되고 난 다음에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볼 수가 없어요. 재미있게 보던 예능 프로그램은 짜증이 나고, 드라마나 영화도 보다보면 화가 나요. 친구와 가족들과도 점점 말이 안 통해서 조금씩 멀어지는데, 어떡하면 좋죠?”라며 울음에 가까운 물음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 외부에서 읽고 들었던 이야기와 겹쳐서 몰입에 방해가 될 때가 있다. 영화관에서 흘러가는 대사와 별도로 이런 자막이 내 머릿속을 흘러간다. ‘저 어마어마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촬영장에서 감독이 여자일 때와 남자일 때 태도가 너무나 다르다던데, 여자감독을 티나게 무시한다지. 사실적인 연기로 극중 긴장을 잘 이끌어가는 저 배우는 애드리브라며 상대 여배우에게 갑자기 육두문자를 날렸었다지. 저 겁탈 장면은 사전에 여배우와 협의는 된 걸까….’ 이러니 피해 의식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피해 의식이 생기는 걸 두려워할까. 일단 우리 사회에서 ‘피해 의식’은 ‘남 탓을 한다’는 말과 동의어로, 보통 부정적인 어조로 쓰인다. 하지만 이건 과대망상이나 남 탓하기라는 문제 행동을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이다. 이런 식의 덧씌우기는 피해자가 ‘건강한’ 피해 의식을 가지는 걸 방해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피해 의식(victim mentality)의 원뜻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 원인이 아니다. 둘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을 막을 의무가 없다. 셋째, 피해자는 권리를 침해받은 자로서 공감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피해 의식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없어져야 할 것은 피해 의식이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피해 의식 때문에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슷비슷한 영화만 보고 그 익숙함을 재미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때문에 재미를 잃었다면 페미니즘을 멀리한다 해서 다시 재미가 생길 리 없다. 새해에는 남자들로만 가득 찬 스크린에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한다. 재미가 없는 건 내 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