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불이 준호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과묵이 기탁씨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긴 시간은 아닐지라도 내가 곁에서 본 준호씨는 쾌활했습니다. 흥에 겨워 노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지요. 상대적으로 입이 무거운 기탁씨와는 넉넉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우리는 각별한 우정을 나눈 사이더군요. 2015년 여름,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차광호씨가 408일이라는 유례없는 굴뚝 고공농성을 끝내고 내려오던 날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대들은 굴뚝 위 동료를 살려서 내려오게 해야만 할 피 말리는 임무수행 중이었지요. 그즈음 차광호씨는 “날마다 떨어지는 꿈을 꾼다”고 말했고, 그대들은 그 악몽이 현실이 되어선 안 되기에 가슴을 졸였습니다. 그 여름의 노사합의는 목숨을 걸고 싸운 끝에 이룬 귀한 합의였습니다.
2016년 겨울, 박근혜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 검열에 맞서 친구들과 광장노숙투쟁을 감행할 때 그대들과 결합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여름의 합의가 휴지 조각 같은 기만에 불과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요. 끔찍했던 넉달 반의 노숙은 그대와 같은 ‘슬픈 농성의 달인’이 함께했기에 겨우 가능했습니다. 박근혜의 계절이 멈추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대들의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을 짓기 위해 기꺼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노가다’를 뛰는 와중에도 가슴을 짓눌렀을 기탁씨의 고뇌, 강정생명평화대행진 뜨거운 길 위에서 행진단의 안전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문득 먹먹했을 준호씨의 심경을 이제와 생각해봅니다. 박준호·홍기탁, 그대들은 지금 한강이 보이는 살벌한 75m 겨울바람의 굴뚝 위에 있습니다. 그저 바람만이 아니라 유독성 연기가 쉴 새 없이 들이칩니다. 그럴 때마다 그대들은 사라졌다가 보이길 반복하지요. 어느새 두달째. 3년 전 굴뚝 위에 있던 광호씨가 이제는 그대들을 올려다 보며 수발을 듭니다. 이 가혹한 바통터치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파인텍 자본에 요구합니다. 거짓은 됐습니다. 약속을 지키십시오. 준호·기탁씨에게 요구합니다. 건강하게 내려와야 합니다. 다시 만납시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