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번 갔습니다.” 그가 다녀간 곳은 모두 없어진다 하여 ‘파괴지왕’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주호민 작가가 <신과 함께-죄와 벌>(이하 <신과 함께>) 촬영현장에 다녀온 것을 두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다. “촬영 중 김용화 감독님이 득녀하셨다는 소식에 선물도 드릴 겸 겸사겸사….” 행여 흥행에 누를 끼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었는지 이 질문에는 준비한 답변도 있단다. “흥행 기록을 파괴할 것이라는 뜻의 그 파괴지왕이죠.”

제작비 400억원, 제작까지 6년여, 한국 최초로 기획 단계부터 1, 2부 시리즈물로 구성한 새로운 시도. 주호민 작가는 이토록 기념비적 판타지물 <신과 함께>의 뼈대를 만든 원작자다. 주인공이 죽어야 비로소 시작되는, 죽어서 저승에 가서도 ‘더 나은 죽음을 영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망자와 그를 도와주는 저승차사들의 이야기. 전통사상과 불교의 윤회사상에 입각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선과 악을 아우른 저승 세계관을 확립한 원작은 2010년 첫 연재(네이버)와 함께 방대한 세계관으로 화제를 모았고 각종 만화상을 석권하며 지금까지 게임, 뮤지컬, 소설 등으로 만들어진 웹툰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그간 웹툰의 영화화가 꾸준히 시도되고 있지만, 한국 기술력으로 지옥도를 재현한 판타지 블록버스터 <신과 함께>에 원작 팬, 영화 관객, 한국영화 업계가 거는 기대는 그 이상이다.

-<신과 함께> VIP 시사 후 제작자 원동연 대표가 ‘원작자 주호민 작가님에게 온 촉각을 집중했다’는 말을 하더라. 원작자의 반응이 사뭇 궁금하다.

=아내와 같이 보러 갔는데, 보면서 많이 울었다. 후반부에 감정을 흔드는 ‘눈물구간’이 있더라. 원작에서 의문사당하는 병사가 영화에서는 자홍(차태현)의 동생으로 나오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원작의 무미건조한 느낌과 달리, 감정 진폭도 크고 활력 있는 캐릭터로 변형됐더라. 보고 나니 무엇보다 안도감이 컸다. 제작비, 제작기간 등 부담이 큰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보고 나니, 김용화 감독님의 <국가대표>(2009)보다 좋았다. 아니 감독님 작품 중 제일 재밌었다.

-영화로 구현된 부분 중 가장 마음에 든 지점은.

=원작이 3부작 구성이다.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 ‘신화편’은 일종의 프리퀄로 강림 도령과 해원맥의 사연을 말하기 위해 만들어놓았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강림(하정우)의 전사가 나오더라. 영화는 2부작으로 만들어지는데, 원작 3부작의 요소들을 이렇게 녹여놓은 게 감사했다. 원작자가 만든 것들을 잘 이해하고 그걸 이식해준 게 대단하다 싶었다.

-원작에서 꼭 구현되었으면 하는 에피소드나 장면은 없었나. 가령, 허튼 말을 한 혀에 나무를 심는 장면 같은 건 CG 구현이 기대됐는데 빠졌더라.

=빠져서 아쉬운 것보다 오히려 원작에서 내가 그린 장면이 스크린에 재현될 때 쾌감이 상당하더라. 특히 수홍(김동욱)의 어머니가 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끌려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만화는 정말 ‘헐렁하게’ 그렸는데. (웃음) CG를 입힌 어마어마한 액션 장면으로 만들어지니 시각적 쾌감이 엄청나더라.

-원작 팬들을 가장 들썩이게 한 변화는 망자를 대변하는 염라국 국선변호사 진기한 캐릭터가 빠진 점이었다.

=말 그대로 가장 큰 변화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진기한 캐릭터의 부재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성치 감독 영화를 보면 그가 출연하지 않아도 있는 듯 느껴지는 것처럼. 진기한의 캐릭터가 강림의 일부더라. 그래서 원작의 강림도령과는 좀 달라졌다. 강림도령이 다혈질에 폭력적인 성향이 조금 있다면, 영화의 강림은 이성적인 진기한과 결합되면서 전체적으로 좀 차분해졌다. 해원맥(주지훈)은 원작과 반대다. 껄렁하고, 쉬지 않고 농담도 하고 그런다. 해원맥까지 원작처럼 과묵해지면 강림, 덕춘(김향기)과 3인방의 조화가 깨지겠더라. 세 캐릭터를 적절히 조화롭게 변형했다 싶었다.

-원작의 주인공인 망자 김자홍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아이를 구하다 죽은 소방관 김자홍(차태현)으로 바뀐 것도 큰 변화다. 원작의 김자홍이 평범함으로 독자에게 쉽게 공감대를 형성했다면, 소방관은 아무래도 직업적 특수성이 있는 캐릭터가 아닌가.

=원작의 김자홍은 과로가 겹쳐 병에 걸려 죽는 평범한 남자다. 그가 부모님과 소원하긴 했지만 가족 이야기가 크게 나오지도 않는다. 영화는 그와 달리 한 가족의 아픈 기억들을 바탕으로 거기에서 주제를 끌어내더라. 감독님의 어려웠던 개인사가 반영된 스토리라 신파적인 부분이 부각됨에도 진정성 있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껏 웹툰 원작 영화들을 돌아봐도, 이만큼 원작을 크게 각색한 건 처음이다. 무엇보다 자홍 가족의 숨겨진 사연이 밝혀지는 부분이 하이라이트다. 원작에 비해 사건이 한층 커졌다. 빈곤계층 문제를 통해 지금의 사회 현실을 반영한, 꽤 지독한 설정이다.

=만화는 두개의 이야기가 별개로, 평행선처럼 가는 구조라면 영화는 한 인물의 사정이 다른 한 사람의 재판에 영향을 끼치는, 엮인 관계다. 영화는 두 시간 남짓의 압축된 시간에 커다란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만화를 타임라인대로 옮긴다면 상당히 밋밋했을 거다. 큰 변형을 했음에도 장면 곳곳에 원작의 요소들이 녹아 있어서 원작을 훼손했다든가, 원작을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든가 하는 부분은 안 보이더라.

-기획부터 제작까지 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 작품이다. 판권 계약을 한 건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초였다. 원동연 대표님에게 전화가 왔다. 만화를 너무 재밌게 봤고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더라. 너무 신나는 일이었고 흔쾌히 승낙했다. 그땐 만화의 지옥 세계를 구현하는 게 걱정도 되더라. 그러다가 김용화 감독님이 합류하고 나서 당시 파주에 있던 덱스터 스튜디오를 견학갔다. 이석훈 감독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을 작업 중이었는데, 시연을 보고나서 이 정도의 CG 수준, 작업환경이면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믿음이 가더라.

-제작보고회에서, “제주 신화를 졸여서 만든 게 만화고, 만화를 졸여서 만든 게 영화다”라는 말을 했다. ‘졸일수록 맛있다’는 말에서, 2차 창작자가 하는 원작의 변형을 기꺼이 수용한다는 말로 들렸다. 시나리오 개발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의사표현을 했나.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 읽어보고 감독님을 한번 만난 게 전부다. 그때 어떻게 읽었는지 의견을 전하고 내가 의문스러운 점도 여쭤보고 그랬다. 예를 들어 자홍이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가짜 편지’를 만드는 에피소드는, 내 기준으로는 감정이 좀 과하다 싶었다. 그 자리에서 나도 원작 팬들이 했던 질문을 감독님에게 다 물어봤다. 설득되더라. (웃음)

-영화 속 빈부격차 문제, 군대 내 의문사 등은 원작에서 제기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작이 나온 지 7년째인데 사회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그래서 여전히 유효한 문제제기다.

=정말 똑같다. <신과 함께>의 첫 시작인 ‘저승편’을 시작한 게 8년 전이다. 지금 다시 봐도 그런 문제들이 전혀 낯설지 않을 만큼 개선되지 않았고, 그래서 씁쓸하더라. 1편에서 고물 줍는 할아버지와 손주가 나오는데, 그 캐릭터가 <신과 함께> 두 번째 이야기인 ‘이승편’의 주역이다. 아마 영화의 2부에 그 캐릭터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할 것 같다.

-반면 그사이 웹툰의 공급과 수요는 부쩍 늘었다. 장르가 다양해지고 형식, 분량에 있어서도 변화가 컸다. 지난 6월 ‘네이버 웹툰 앙코르! 명작웹툰 리스트’에 올라 재연재되고 있는데, 그 변화를 한층 더 실감할 것 같다.

=물리적으로 웹툰 1회당 평균 분량이 늘어났다. <신과 함께> ‘저승편’ 1화가 6페이지였고, 보통 한화수가 12페이지 정도라 당시에는 상당히 많이 그리는 거였는데, 지금은 그 정도면 너무 적어 독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심지어 ‘70컷 이상 올리라’는 분량 하한선을 두는 사이트도 있다. 사실 독자들의 작품 만족도는 한 화수에 이야기의 진행이 얼마나 이루어졌나에서 오는 건데. 그런 물리적 제약이 작가들에겐 고스란히 부담으로 다가오는 거다.

-사회적인 가치 판단의 기준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연재 때 사후세계에 간 수홍을 보고 ‘착하게 살겠다’는 반응이 다수였다면, 지금은 ‘사회구조적 문제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하는 분위기다. 곳곳에 7년 전과는 달라진 가치들이 상당 부분 엿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PC(Political Correctness)함이다. 정치적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상당히 높아졌다.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건데, 이런 요구가 창작자로서는 때로 난감할 때도 있다. 가령 주인공이 개과천선하는 만화라면 초반에는 그가 방탕한 모습도 보여줘야 하는데, 1화에 이미 그걸 지적하는 비난 댓글이 쇄도한다. 창작자들이 상당히 위축되는 지점이다.

-가령 ‘전형적인 한국 남자’로 김자홍을 지칭하며 “표현을 하지 못할 뿐 마음속엔 늘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고 옹호한 지점에서도 비난이 쇄도했다.

=자홍이 노총각임을 강조하면서 불쌍하다, 결혼도 못했다, 하는 부분 같은 것들. 그때 당시는 <개그콘서트>를 비롯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희화화하면서 했던 이야기들인데, 다시 보면 문제되는 부분들이 많다. 재연재하면서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수정을 할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흑역사도 역사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그대로 올리고 있다. 물론 그건 자기 만족일 뿐 그 만화가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파생되면서 그릇된 가치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난도 없지 않다. 나 역시 변화하고 있고 매번 새 작품을 연재할 때마다 그 부분들이 반영되어가고 있다.

-원작의 2차 판권화로 볼 때 <신과 함께>는 웹툰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뿐만 아니라 뮤지컬 <신과 함께_저승편> 공연,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 최근에 도덕 교과서에도 일부 내용이 채택됐고, 만화 판매 60만부 돌파 소식도 들리더라.

=교과서에 실린 건 정말 놀랍더라. (웃음) 3부까지 완결된 지도 벌써 4년여가 지났는데 영화, 뮤지컬, 게임 등이 나올 때마다 그게 뉴스화되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다. 그때마다 다시보기 순위가 확 올라간다.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최근 웹툰이 성과를 내고 독자층이 공고해지는 동안, 정작 창작자와 플랫폼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한국웹툰작가협회 부회장, 웹툰 작가들의 선배로서도 책임감이 느껴지는 시점이다.

=마침 오늘 레진 작가들과 함께하는 ‘레진 코믹스 작가 간담회’를 가진다. 다같이 모여 의견 청취를 하는 자리다. 플랫폼이 잘돼야 작가도 성장하고, 작가가 잘돼야 플랫폼도 성장할 수 있다. 따로 갈 수 없는데, 지금은 양쪽이 서로 일방적인 주장만 하고 있다. 먼저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게 첫 번째 해결 과제다. 법적 대응에 있어서 작가 개개인이 대응하기 힘드니, 협회 차원에서 나서서 이 문제를 파악해보자고 모이는 자리다. 문제가 있다면 의견을 취합해서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협회에 거는 요구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특히 만화가들 사이에서 협회의 역할에 대한 비난도 더해지던데.

=올해 만들어진 한국웹툰작가협회는 연재 경력 3개월 이상인 작가들로만 구성되어 작가들의 복지와 창작 환경 개선을 위해 마련된 단체다. 현재 200명 정도인데 꾸준히 회원 수가 늘고 있다. 여러 사안들이 터지면서 협회가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난이 큰데, 우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작가 혼자 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계약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다. 만약 계약 미팅이 있다면 장소도 우리쪽에서 제공하고, 불이익을 당했을 때는 힘을 모으는 역할까지 해나가려고 한다.

-웹툰이 이제 한국영화 아이디어의 원천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닌 시대다.

=핵심은 영화 같은 웹툰이 영상화되는 게 아니라 재밌는 웹툰이 영상화되는 거다. 웹툰이 재미있다면 언제든 2차 판권으로 옮기는 건 가능하다. <신과 함께>가 계약되고 나서 차기작을 할 때도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늘 첫째는 만화적인 재미에 집중해서 임한다는 거다.

-이제 개봉인데, 동료 작가들이 요트 뭐 살 거냐고 묻는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스코어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잘되면 인센티브를 좀 받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잘되면 웹툰 작가들에게는 고무적인 일이 될 것 같다. 흥행과 함께, 같은 판타지 장르가 더 개발될 수 있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 웹툰 원작인 <강철비>도 스케일이 엄청난데, 한국영화의 기술력이 발전하면서 웹툰의 설정들이 전혀 어색함 없이 구현되는 것 같다. 최근 본 연상호 감독의 <염력> 예고편이 대단하던데, 만약 강풀 작가의 히어로물 <무빙>도 영상화되면 이런 느낌의 작품이지 않을까. 동료 작가들도 그런 점에서 흥행에 거는 기대가 크다. 물론 당장은, 영화가 잘되면 맛있는 걸 같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긴하더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