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 표판매소 옆에 구인광고가 오징어 모양으로 흔들렸다. 가족 같은 찬모 구함, 월 220만원, 오전 10시~오후 10시, 주1 휴무. 주 72시간을 일하고 정확히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조건. 사람이 쉽게 구해질 리 만무했다. 붙여놓은 분에게 알려드리고 싶었다. ‘가족 같은’이라는 말만 빼도 어쩌면 조금은 더 쉽게 구해질지도 모른다고. 내친김에 벼룩시장을 펴들고 구인구직란을 살펴봤다. 가족 같은 홀서빙, 가족 같은 여주방장, 가족 같은 분위기 요양보호사, 가족 같은 병원 간호조무사…. ‘가족 같은’이라는 수식어는 구인란에서 가장 월급을 적게 주고, 여성이 많이 몰려 있는 직업군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구직자에게 가족 같다는 말이 호감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완전히 틀렸다. 사용자는 따뜻하고 화목한 성장의 공간으로 이 문구를 사용했을 테지만, 노동자는 착취와 폭력에도 쉬이 문제제기할 수 없는 착취의 공간으로 ‘가족 같은’ 현실을 경험한다. 김보통 만화작가가 “조직의 끈끈한 정을 원치 않는 사람”을 구인광고로 올려서 호응을 받았던 것도 이같은 이유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회사일수록 회식은 잦고, 업무는 공사영역을 마구 오가며, 급여는 적다.
가족 자체에 내재된 의미와 경험도 달라지고 있다. “가족 같은”이라는 수식에 대한 경험 차이는 한 가족 안의 세대와 성별에 따라서도 다르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지지와 격려와 지원을 받는 행복, 화목, 성장의 공간이지만, 다른 이에게 가족은 서로가 서로의 볼모가 되어 희생과 봉사와 돌봄으로 이어지는 유폐, 착취, 폭력의 공간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고 수명을 단축해가며 일을 하지만, 그 이유로 자식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학생들의 보고서에는 가족에게 받은 학대의 기록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혹독하게 체중 관리를 시키는 어머니와 딸의 옷차림을 보며 길거리에서 낯선 아저씨가 하는 말을 그대로 던지는 아버지의 사례 정도는 양반이다.
한샘 성폭행 사건이 실시간 검색에 오르고 며칠 후 한샘 사장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린 직원을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과문을 보냈다. 참고로, 한샘은 가족의 화목한 대화가 가능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기업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나는 이전에 이것과 완전히 똑같은 사과를 목격한 적이 있다. 동료교수의 성폭력 사건 처리를 담당하게 된 교수가 사건을 알게 되자 항의하러 찾아온 학생의 ‘아버지’에게 한 말이었다. “따님을 저희에게 맡겼는데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사회는 성인 여성을 공적으로 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게 다 가족 같은 분위기 타령 때문이다(띄어쓰기에 주의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