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시를 읽을까. 항상 시집을 곁에 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장 속에 콕 박혀 있던 시집을 꺼내 접어둔 책귀를 펼쳐 꼭꼭 씹어 읽을 때가 있다. 주로 마음이 다쳤을 때다. 다정한 위로가 필요할 때다. 은유적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문장을 읽고 싶을 때다. 시인을 읽는 독자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우리의 시인들은 세상의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중략) 자주 오해되지만 그런 비폭력적인 언어의 상태가 순한 단어와 예쁜 표현들로 달성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떤 ‘시선’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그런 시선을 가능케 하는 어떤 ‘자리’에 설 때 생겨난다. 그럴 때 시인은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발생한 100명의 시인이 문학동네시인선에서 100권의 시집을 냈다. 문학동네시인선은 시집마다의 개성을 강조하는 컬러풀한 표지, 시 속에서 뽑은 문장형 제목으로 시집에 세련된 서정성을 부여해왔다. 티저 시집의 제목 역시 오병량 시인의 <편지의 공원> 중 ‘젖은 베개를 털어 말리고 눅눅한 옷가지에 볼을 부비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에서 발췌했다. 사실 문학동네시인선은 시를 어렵게 여기던 독자들에게 시를 소개하며 지평을 넓혀왔고 새로운 시인들 역시 다수 발굴했다. 시집 중 단연 베스트셀러였던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역시 문학동네시인선의 32번째 시집이다. ‘티저 시집’에는 앞으로 문학동네시인선에서 시집을 낼 시인 50명의 시 한편과 산문 한편을 묶었다. 자,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시인은 무엇을 쓰는가. 서효인 시인은 시집에 실린 산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무엇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무엇이든 씀으로써 별생각 없이 미끄러지는 일상에 불편한 감각 몇이 돋아나길.” 시인이 아닌 사람들이 일상을 살 때, 시인은 거기에서 불편함 감각을 발견하고 시어를 발명한다. 그렇게 발명되어진 시어들이 이 시집에 다부지게도 묶여 있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되’었다.
좋은 것들을 모아두었다
겨울이 있어요 거울이 있어요 겨울의 거울이 좋아요 좋은게 좋아요 좋아하는 게 좋아요 좋아지는 게 좋아요 조금씩 자꾸자꾸 더해지는 게 좋아요 아주 추워 아무도 지나지 않는 거리가 좋아요 아무도, 그거 좋아요 막막한 거리(距離)가 좋아요 창가의 차가운 손가락들 기를 쓰고 달라붙는 입술과 뾰족해지는 물방울들이 좋아요 내일은 더 춥고 모레는 더더욱 춥고 날마다 더해지는 거 좋아요 얼음 속의 빛, 결빙된 순간들 순정한 입자들 무한한 인칭들 안녕을 묻고 답하기도 전에 얼어붙는 당신의 눈빛은 물기 어린 어린 생의것, 수면 깊이 요동치는 밭은 숨은 두려워지는데 겨울 속의 거울 속에 또 눈이 내려요(김박은경, <오늘의 영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