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안의 아기사진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첼로 연주자 엠마에게 어느날 유방암 진단이 내려진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아기는 지워야 한단다. 이렇게 아기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는데! 처음엔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탐탁치 않아 하던 남자친구 시몽도 “다른 병원에 가보자.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라며 엠마의 손을 끌고 나선다. 임신 5개월에 접어들었으므로 항암제 치료를 해볼 수 있다는 종양전문의와 산부인과 전문의의 말에 이들은 용기를 낸다. 프랑스·벨기에 합작영화 <줄리엣을 위하여>는 솔베이 앙스파흐 감독의 실제 이야기에 기초한 작품이다. 감독은 새로운 생명을 안고 사그러들어가는 운명과 싸워야 하는 한 여성이 느끼는 고통과 분노, 기쁨, 슬픔을 과장됨 없이 그려나가면서 삶의 희망과 용기에 대해 나즈막히 이야기한다. 별다른 클라이막스 없는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건 단연 엠마 역을 맡은 까랭 비아의 연기다. 그는 거울 앞에서 화사한 단장을 하고 신나게 춤을 추며 “나 병원에 가”라고 말하거나, 연주단 친구들한테 “나 대신 남자나 아주 못생긴 여자를 뽑아줘. 그래야 내 생각이 나지”라며 천연덕스런 미소와 활기를 보인다. 그래서 뭉텅뭉텅 빠지는 머리카락과 더이상 주사를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맥이 망가진 팔목을 갖고, 한쪽 가슴 없는 여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절망을 느끼는 그의 모습은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엄마는 너 때문에 아픈 게 아니란다. 엄마는 네가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어.” 태어난 줄리엣에게 속삭인 엠마는 이제 무균치료실로 들어간다. 살지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엠마는, 집에 있는 시몽과 전화를 나눈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당신이 오면 할 거야.”“내일 또 전화할게. 잘자. 사랑해.” 사랑하는 이들은 이렇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라면 어떨까. 자꾸 뒷머리가 당겨지는 여운 긴 영화다. 20일 개봉.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