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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이시이 유야 감독 - 비관을 직시하되 온기를 유지한다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17-12-14

삶의 초상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동시대 일본인이 보고 듣고 느끼는 바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정확히는 자신의 감각에 충실한 것일 테지만 그건 결국 사회적인 현상의 정확한 반영이기도 하다. 신작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도쿄의 청춘들의 공허와 삶의 고단함을 감각적으로 그린다. 모두가 밤하늘이 어둠에 싸여 있다고 생각할 때, 화려한 네온사인과 조명 속에 매몰되어갈 때 이시이 유야 감독은 그 속에서 기어코 짙은 푸른색을 발견해낸다. 서울독립영화제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나 세계를 그리는 법에 대해 물었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로 올해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았다. 같은 영화로 10월에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는 각각의 특색이 있어 즐거웠다. 한국 관객은 감각적으로 느끼고 깊은 부분까지 해석해서 코멘트를 해준다. 일본에서는 이런 적극적인 반응을 접하기 힘들기 때문에 늘 기대를 안고 찾아온다. 열띤 반응을 접하고 나면 영화를 만들 동력이 생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사이하테 다히의 시집 <밤하늘은 항상 최고 밀도의 푸른색이다>(夜空はいつでも最高密度の靑色だ)를 모티브로 했다. 전작 <이별까지 7일>(2014)이나 <행복한 사전>(2013)과는 다른 느낌이다. 오히려 초창기 영화들과 비슷한 것 같은데.

=쉽고 편한 영화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대도시 도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번뇌를 표현하고 싶었다. 현재를 사는 도시인들의 기분. 말로 정리하면 이 정도겠지만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게 어렵다. 그런 게 가능한 방식이 시라고 생각한다. 스토리 위주의 영화로는 내 마음을 전달하기 힘들다. 사이하테 다히의 시에서 받은 영감들을 나름대로의 감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일부러 어렵게 만들 생각은 없다. 가능한 한 쉽고 명확한 게 좋다. 다만 이번 영화는 100명이 보면 100명이 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시를 닮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최근에는 소설이나 시 등 원작이 있는 영화들을 영화화하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명도가 있는 원작을 다루면 투자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영화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다. 개인적인 이유는 시야를 넓히고 싶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만 계속 하다보면 감각이 예민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나를 넓히고 주변으로부터 자극을 받다보면 내가 할 수 없는 생각들이 촉발된다. 세계를 넓혀나가기 위해 의식적으로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찾는 측면도 있다.

-그동안 남성을 그릴 땐 대체로 덜 자란 아이 같았던 반면 여성은 강인한 존재로 묘사해왔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여성 미카의 불안감, 공허함을 중심으로 남성인 신지가 이를 위로하는 형식이다.

=재미있는 질문이다. 내가 캐릭터를 그렇게 다룬다고는 한번도 생각 못해봤다. 분명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내 안에서 여성은 현명하고 강하다. 아마도 그간의 캐릭터가 나의 분신들이었던 만큼 내게 조언해주는 이상적인 존재들이 그렇게 묘사된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 이번 영화에서 시를 쓰는 화자는 여성인 미카(이시바시 스즈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한 곳에 다다른 느낌을 미카의 입장에서 상상하는 거다. 무엇이 희망이 될지, 그녀에게 구원은 어떤 형태일지 생각해봤다. 대상이 되는 남자 캐릭터 신지를 나중에 만들었기 때문에 미카가 바라는 이상적인 부분이 투영된 존재일 수도 있겠다.

-신지를 한쪽 눈만 보이는 남자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시집을 읽고 처음 떠오른 이미지였다. 세상 풍경을 다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다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보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 한쪽 눈만 보이지만 미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면서 사는 사람. 그건 보이지 않는 걸 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런 부분을 반영한 설정이다.

-2008년 홍콩국제영화제에서 ‘에드워드 양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번 작품을 보면서 시대의 방황을 그려냈다는 측면에서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이 떠올랐다. 이 영화 속 도쿄 젊은이들의 모습은 실제로 현재 도쿄인들의 모습인가, 아니면 당신이 상상한 상징들인가.

=신선한 지적이다. 그런 관점에서 의식해보지 않았다. (잠깐 생각을 정리한 후) 아마도 시에서 얻은 관념적인 묘사가 아닐까 한다. 지금 현재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다소 감각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신지는 26살의 젊은이지만 나는 34살이다. 보고 듣고 자란 환경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다못해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과 휴대전화 속에서 자랐다.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나의 감각적이고 관념적인 반영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신지는 “내일 헤어지더라도 오늘의 소중함을 간직하자”고 말을 건넨다. 도쿄에서 삶을 버텨내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리는 만큼 전반적으로 차갑고 공허한 분위기지만 그 바닥에는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다.

=영화를 만들 때 대전제가 하나 있다. 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에서 눈을 돌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을 선명하게 그리는 것이 첫 번째다. 비관적 상황을 직시해야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온다고 믿는다. 다만 거기서 멈추고 싶진 않다. 피부로 느낀 현실을 이야기하는 건 그다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대신 그 안에 나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안일한 희망을 넣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느끼는 걸 말할 뿐 그걸 꼭 희망이라 정의하고 싶진 않다. 항상 그래왔다.

-노상 라이브를 하는 무명의 여가수가 반복해서 나온다. 상징적이고 감각적인 화면이 많은 영화지만 그가 부르는 <도쿄 스카이>의 가사는 매우 직접적이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게 도쿄에서의 삶이다. 하지만 신지는 그 노래를 듣고 자신을 위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 만남 역시 도쿄에서의 삶이다. 어떤 계기로 어떻게 만나 서로 위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영화를 위해 만든 노래다. 가사도 직접 썼다.

-변하지 않는 게 있는가 하면 변하는 부분도 확실히 느껴진다. 20대인 2008년 인터뷰에서는 “삶의 테마는 강하고 씩씩하게”라고 했다. 30대인 2015년 인터뷰에서는 “내 안에 화와 분노가 굉장히 많다”고 밝혔다.

=지금도 나의 테마는 분노다. 다만 끓어오른다기보다 위화감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시대의 공기 속에서 악취가 느껴지면 영화로 표현한다. 물론 경험이 쌓이면서 바뀌는 것들이 있다. 20대의 나는 결벽이 있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나 역시 결점이 많은 인간이다. 30대에 들어서서 새삼 이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불완전하기에 발생하는 매력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20대에는 나름대로 완벽한 삶을 상정하고 이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그렸다면 지금은 불완전한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데뷔 초반엔 다작에 가까웠는데 최근엔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 같다. 차기작은 언제 만날 수 있나.

=실제로는 부지런히 찍고 있다. (웃음) 아마 그렇게 느껴지는 건 다른 분야의 작업도 하기 때문일 거다. 올해는 2시간짜리 TV드라마를 찍었고 무대연출도 시작했다. 현실적인 문제로 영화만 하긴 어렵다. 다른 매체에서의 작업이 확장되어 영화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고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무산되는 것도 많다. 그저께도 내년 5월 제작 예정이었던 영화 하나가 무산됐다. (웃음) 2018년에 시작하려 한 프로젝트가 몇 가지 있어 고민 중이다. 멀지 않은 시기에 한국 스탭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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