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홍보 리포트 제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던 송명훈 기자.
김나희 평론가가 <씨네21> 추석합본호에서 KBS와 MBC의 언론 총파업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1124호 현장 기획, ‘KBS 오태훈 아나운서, 김현석·정연욱 기자, 양승동 PD, MBC 김민식 PD, 김민욱 기자가 전하는 언론 총파업 뒷이야기’). 이후 지난 11월 13일 임시이사회에서 김장겸 사장의 해임안이 통과되며 MBC 조합원들의 투쟁은 일단락됐으나, 지난 9월 4일 시작된 KBS 파업은 아직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월 26일, 국회 KBS 국정감사에서 고대영 사장은 침묵을 유지했다. KBS 새노조 소속 기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숱한 질문을 던졌으나 그는 아무것도 답하지 않았다. 지난 1124호에 이어 김나희 평론가가 KBS 총파업 80일차를 맞아, <인천상륙작전> 홍보 리포트 제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던 서영민·송명훈·이슬기 기자를 만났다(지난 11월 10일 2심 재판부는 “아이템에 대한 이견 제시와 이견 조정 절차를 모두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지정한 아이템 취재 강행을 요구하는 것은 직무상의 정당한 명령이라고 볼 수 없으며, 기자들은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함에도 신념과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위 아이템의 취재 및 제작을 강요받은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며 징계는 모두 무효이고, 이에 따라 KBS 사측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편집자). 더불어 KBS와 KBS 자회사가 총 31억8천만원을 투자한 <인천상륙작전>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도 함께 살펴봤다.
11월 22일, 파업 80일을 넘긴 KBS 본관 광장은 집회 준비로 한창이었다. 삼삼오오 짝을 이룬 조합원들이 음악을 틀면서 음향을 체크했고, 바닥에는 깔개가 깔렸다. 집회가 시작되는 오후 2시가 되자, 광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저희는 한명이 모든 것을 다 하지 않아요.” 이날 진행을 맡은 오승원 아나운서는 5명의 아나운서가 자발적으로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집회 진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청자들보다 더 만족시키기 어려운 선후배들 앞에 틀어야 하기 때문에 매일 공들여 영상을 만든다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임종윤 PD가 절묘한 영상 속 장면들을 놓치지 말라고 눈짓을 주었다. 80일을 넘어 90일을 바라보는 시점, 11월 13일 김장겸 사장 해임안이 통과된 MBC와 달리 KBS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이 개봉 직후 KBS 뉴스에 소개된 이유
2016년 7월 29일은 KBS 문화부 소속 서영민·송명훈 기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오후 3시, 편집회의 이후 문화부장과 팀장은 <인천상륙작전>(2016) 관련, 관객과 따로 가는 전문가 평점을 두고 이념 프레임 논란이 있으니 다음날인 토요일에 영화와 관련된 리포트를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 전문가 평점은 역대 영화 중 최저점을 준, <씨네21>의 별점 평에 기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 홍보 리포트 제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징계를 받았다. KBS의 징계사유서에는 “오후 3시30분, 부장이 다시 리포트 제작을 지시하였으나 거부하였다. 오후 6시, 부장이 ‘국장 주재 편집회의에서 결정이 된 아이템으로 공식적인 지시다. 취재 거부는 취재 및 제작 거부에 해당한다’고 말했으나, 총 4차례 리포트로는 적합하지 않다며 거부했다”고 적시되어 있다.
서영민 기자의 기억은 이와 다르다. “저희가 반대한 이유는 너무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거였다. 개봉 후 83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예매율도 1위였지만 그 전주에 개봉한 <부산행>은 놀라운 흥행 속도에도 불구하고 <9시 뉴스>에서 다루지 않았으니까. 네티즌 댓글과 평론가 평점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만으로 리포트를 하기엔 부족했다. 관객수가 좀더 명확하게 나온 이후, 혹은 500만, 천만이 넘어가면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개봉 전부터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9시 뉴스> 보도는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 특히 영화는 상업적인 매체다. 간접 홍보의 가능성을 경계하며 어지간하면 다루지 않는 게 공영방송이자 신뢰도 1위의 <9시 뉴스>로서 저희가 견지해온 자세였다.” 부장은 못하겠다는 그에게 리포트를 해야 하는 이유를 “국장이 시킨 거다. 시키면 하는 거고, 그게 보도본부 30년 전통이고 원칙”이라고 말했다. 진전 없는 논의에 지친 서영민 기자는 “못하겠습니다. 징계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책상을 손으로 내려치며 자리를 떠났다.
평소 회사 내부에서 리포트가 좋고 자질 있는 기자로 소문난, 온화한 성격의 그였다. 같은 공간에 있던 송명훈 기자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참 이상한 느낌이 드는 지시였다. 계속 ‘국장이 시킨다’는 말만 반복했다. 제가 ‘국장이 시킨다면 무조건 하는 거냐’라고 물었는데도 직접 리포트를 해야 하는 우리 입장을 전혀 들어주지 않아 대화가 되지 않았다. 대체 이 리포트가 꼭 토요일에 나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토요일에 MBC <뉴스데스크>에 우리에게 지령처럼 떨어진 것과 똑같은 헤드라인의 리포트가 나왔다. 우리가 윗선의 지시에 따랐더라면 개봉 첫주 주말, 양대 공영방송에서 비슷한 띄우기성 리포트가 동시에 나왔을 거다.” 사측은 두 기자에게 지시 거부에 대한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KBS쪽은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취재 지시는 관객 평점과 전문가 평점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언론의 합리적 의심에 따른 정상적 발제였다. 두 기자는 보도본부 편집회의 논의를 거쳐 문화부 데스크가 정당하게 지시한 취재 지시를 거부했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2016년 8월 24일, 두 기자 모두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KBS와 KBS 자회사가 총 31억8천만원을 투자한 <인천상륙작전>은 이미 모태펀드 지원과 관련해서도 여러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6월, 두 기자가 사측에 제기한 징계무효소송에서, 서울 남부지법 제13민사부는 “기자들이 일방적으로 팀장과 부장으로부터 아이템 제작 지시를 받은 점을 봤을 때, 기자들은 편성 규약에 따라 자신들의 신념과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프로그램 취재 및 제작을 강요받아 이를 거부했으며 이와 같은 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이므로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두 기자의 신념에 기반한 선택을 법적으로 지지해주었다. KBS는 이에 굽히지 않고 항소를 제기했다. 2심이 진행된 지난 11월 1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사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징계를 하려면 상사의 직무상 명령 또는 지시가 정당한 것이어야 하지만 아이템에 대한 이견 제시와 이견 조정 절차를 모두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지정한 아이템 취재 강행을 요구하는 것은 직무상 정당한 명령이라고 볼 수 없다”라며 징계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고대영 사장의 답변을 듣기 위해, 국정감사까지 따라갔던 이슬기(아래 오른쪽) 기자.
고대영 사장은 대답이 없다
리포트를 못하겠다는 의견에 대해 표시가 자유로운 의사소통 과정으로 여기지 않고, 바로 제작 거부에 해당한다며 사측의 징계로 이어진 상황은 이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휴직계를 제출한 두 기자는 잠시 기자로서의 본업을 내려놓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대학원에 진학해 책과 페이퍼와 씨름 중이라는 서영민 기자는 “징계하십시오, 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평론가들은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평론가들의 평에 날선 적대감을 드러내며 포털사이트 평점을 근거로 이념 프레임에 끼워넣는 건 공영방송에서는 해서는 안 될 보도다.” 누군가는 평론가들이 좌빨이라 <인천상륙작전> 같은 훌륭한 영화를 깐다, 는 메시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희생양이 된 두 기자가 조심스럽게 합리적인 의심을 내비친다. “KBS가 영화에 무려 31억원이나 투자한 것도 정말 드문 일이지만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투자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이걸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서영민 기자가 말을 이었다. “KBS는 아직도 고대영 체제이고, 파업 중이라 내부에 숨겨진 진실을 더더욱 캐낼 수가 없다. 아직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할 거다. 이런 대작영화가 어떻게 투자금을 받아 만들어졌는지, 투자가 이뤄진 경로를 파악하면 실체가 보일 거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육아휴직을 쓰고 있는 송명훈 기자 역시 <인천상륙작전>의 KBS 투자에 대한 탐사보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태펀드, KBS와 국책은행들의 유례없는 거액의 투자 지원, 개봉 이전부터 방송과 언론의 전폭적인 밀어주기까지,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닌 영화다. 기자가 기자일 수가 없는 거다. 리포트 하나에도 개입을 했으며, 심지어 가장 정치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문화부까지 이런 식으로 공정한 보도가 이뤄질 수 없었던 거다. 수신료를 받는 KBS가 이렇게 철저하게, 계속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게 현실이다. 파업이 아니면 다른 선택이 없었다.” 송명훈 기자에게 혹시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징계를 받은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기자들을 입막음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리포트만 원했는데 우리가 그걸 하지 않은 거다. MBC와 똑같은 헤드라인에 똑같은 기사를 내보냈다고 생각한다면, KBS <9시 뉴스>가 얼마나 더 우스꽝스러워졌을까. 후회는 안 한다. KBS는 방대하고 규모가 큰 조직이다. 기자협회는 물론 새노조에서 바로 연대해 징계무효소송까지 싸워주었다."
지난 11월 13일, 임시이사회에서 김장겸 전 사장의 해임안이 통과되며 조합원들의 투쟁이 일단락된 MBC와 달리, 9월 4일 시작된 KBS 파업은 아직 실마리가 보이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그리고 10월 26일, 국회 KBS 국정감사에서 고대영 사장은 침묵을 유지했다. KBS 새노조 소속 기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숱한 질문을 던졌으나 아무것도 답하지 않았다. 38기 이슬기 기자는 취재 중 격한 몸싸움으로 상의가 찢어지고, 심지어 계속 질문을 던지는 그를 밀치던 국회 소속의 경호원이 손으로 그의 입을 막기도 했다. KBS 후배 기자들의 질문은 주로 “국정원 돈 200만원은 어디에 썼느냐?”였다. 2009년 5월 7일 국정원이 당시 보도국장이던 고대영 사장에게 200만원을 대가로 “국정원의 노 전 대통령 구속 수사에 대한 개입 의혹”을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청탁한 정황이 지난 10월 23일 밝혀졌다. 국정원 직원을 통해 200만원을 현금으로 받고 그 대가로 보도하지 않기를 선택한 고대영 사장에 대한 퇴진 여론도 한층 더 강렬해졌다.
끝이 보이지 않지만
해고 혹은 징계를 하고 다른 부서로 유배를 보내던 교묘한 방식에서 근래 들어 육탄전으로 변한 걸까. 84년생 젊은 기자에 속하는 이슬기 기자는 본인이 “KBS의 리즈 시절을 모르는 기자”라 더욱 이 파업이 간절하다고 말한다. “선배들은 좋은 시절을 경험도 하고 회사가 나빠진 거지만, 나는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보도 상황이 좋았던 적이 없다.” 200만원에 공영방송의 자존심을 팔아버린 고대영 사장의 답변을 듣기 위해, 국정감사는 물론 중국 출장을 가는 그를 공항까지 따라갔던 이 기자가 말을 이었다. “왜 내가 선택된 건지 모르겠는데, 10월 26일 국정감사에서 내내 엠부시(ambush, 매복한다는 의미의 기자들 사이 은어)를 하고 나니 그날 저녁에 몸살 기운이 살짝 느껴지기는 했다. 국회 경호원들이 고대영 사장의 개인 경호원이 아닌데도 과잉 경호를 하더라.” 오후 8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오후 1시경에 이미 공항 내 환승 호텔에 가 있었던 고대영 사장은 끈질기게 따라붙는 KBS 새노조 조합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회피와 침묵을 유지했다. 대체 이 파업의 끝은 어디일까.
22일 집회를 앞두고 만난 성재호 KBS 새노조 위원장은 80일을 맞은 파업대오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며 승리를 확신했다. 그는 2008년 8월 8일 이후, KBS 기자로서의 정체성이 부채감과 죄책감, 미안함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저희가 잘못한 게 너무 많다. 파업이 끝나고 돌아간다면 그동안 잘못된 언론 보도로 고통받고 직접적인 피해를 보신 분들을 위해 꼭 뭔가를 하고 싶다. 진실을 밝혀드리는 건 물론이다. 왜곡된 언론 보도로 2차 가해까지 입고 상처받은 사연이 너무나 많다. 주로 세월호 유족, 용산참사 유족, 4대강 관련 피해 농민들, 밀양 송전탑, 성주의 사드 배치 주민들, 제주도 강정기지까지…. 그간 KBS 뉴스가 정권의 입장만 대변하는 식으로 몰락해버렸기 때문에 이분들에게는 억울함만 더해졌다. 그건 씻을 수 없는 저희의 과오이자 청산되어야 할 적폐다. 그 시작점이 바로 고대영 사장의 퇴진이다. ‘국정원 200만원 수수’는 물론, KBS 법인카드를 개인적인 용도에만 사용한 내역이 드러난 이사들을 봐도 정말 낯부끄럽다. 이 싸움에서 이기고 KBS를 정상화해야 한다.” 영화 <공범자들>(2017)의 초반, 해체된 탐사보도팀의 일원으로 나왔던 그는 새노조가 생기기 전, 해고 통보에 제작 거부로 맞선 KBS 내 기자협회 연대에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KBS는 노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도 똘똘 뭉쳐서 해고를 막아내고, 징계 수위를 낮출 수 있도록 연대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한마음이라 꼭 이길 거다.” 집회에 이어 피케팅을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그가 큰형처럼 내일의 날씨를 걱정한다. “야외집회라 추위 때문에 힘들 것 같다. 우리는 괜찮은데 집회 오신 분들이 힘들까봐 그게 가장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