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심의 결과를 뒤집을 만한 증언이 될 수 있을까.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014년 부임 직후 전임자인 박준우 전 정무수석에게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업무를 인수·인계받았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조 전 수석은 1심 ‘블랙리스트’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1월 28일 서울고등법원 형사 3부(재판장 조영철) 심리로 진행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 전 수석 항소심 공판에서 박준우 전 수석이 증인으로 출석해 2014년 6월 13일 오후 서울시 효자동의 한 식당에서 조 전 수석을 만나 좌파단체 지원 배제와 우파단체 지원에 대해 설명해주었음을 밝혔다. 박 전 수석은 “좌파단체에 대한 국가보조금 지원 배제가 문제돼 민간단체보조금TF가 운영됐고, 최근 마무리 보고가 이루어졌지만 이후에도 정무수석실이 담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조 전 수석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이날 법정에서 박 전 수석은 조윤선 전 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좌파단체 지원 배제와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을 통한 보수단체 지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실장의 관심 사항이니 정무수석이 챙겨야 하”고, “신동철(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이 이 내용을 제일 잘 알기에 신동철과 의논해서 처리하면 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수석의 이 증언은 지난 5월 조윤선 전 수석의 1심 재판에서 증언한 내용과 다소 배치된다. 박 전 수석은 올해 초 특검 조사에서 “후임이었던 조 전 수석에게 민간단체보조금TF 업무를 인수·인계해줬다”고 진술했으나, 1심 공판에서 “특검에서 그렇게 진술한 것은 사실이지만 추정에 불과했고, 민간단체보조금TF에 대해 (조 전 수석에게) 설명해주었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며 “조 전 수석이 ‘인수·인계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내가) 인수·인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박 전 수석은 2014년 3월 김 전 실장이 “증인(박준우)을 주관으로 정무수석실이 민간단체보조금TF 업무를 주도하라”고 지시한 게 사실이고, 이후 TF업무를 정리한 보고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을 김 전 실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 또한 원심에서 증언했던 내용과 배치된다. 원심 법정에서 그는 “특검 조사 받을 때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을 김기춘과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추측으로 한 진술”이며 “TF 업무가 김기춘 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기억이 없고, 김기춘 실장의 지시를 받은 것인지, 신동철이 먼저 건의해 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민간단체보조금TF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실행을 논의한 조직이었다. 당시 김기춘 전 실장은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고, “문화계 권력을 좌파가 잡고 있”으니,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실태를 전수조사”해 “정부에 비판적 활동을 한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고, “우파에 대한 지원은 너무 없다”며 친정부적 단체를 특별 관리할 것을 수차례 촉구했다. 박 전 수석의 증언대로, 이러한 지시에 따라 2014년 4월 4일부터 5월 하순까지 박준우 전 정무수석과 신동철 전 국민소통비서관 등은 민간단체보조금 TF를 운영하면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김기춘 전 실장에게 제출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보고서를 검토한 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한편, 박준우 전 수석은 1심인 ‘블랙리스트’ 재판에서 허위로 증언하고, 박근혜 정부 시절 대기업을 동원해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개입한 혐의로 최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