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여우가 무대에 올라와 3막 구조의 연극을 소개해준다. 농장에 사는 동물들과 그 주변 숲속의 야생동물들이 저마다 주인공으로 오르는데 기본적으로 우화를 조금씩 비튼 형태에 쉬지 않고 익살을 떨어대는 모험담이다. 첫 번째 ‘황새와 아기보따리’에는 돼지, 오리, 토끼 트리오가 등장해 아기를 무사히 집으로 데리고 가는 여정을 펼친다. 택배를 보내거나 투석기로 던지려는 등 난감한 수법을 떠올리는가 하면 길을 알려주는 철새 무리를 어렵게 만난 순간에 재채기 한방으로 그들을 모두 날려버리는 식의 황당한 실수를 연발한다. 두번째 이야기 ‘빅 배드 폭스’에선 제목처럼 크고 사나운 여우가 되고 싶지만 정작 천성이 여린 여우가 나온다. 잡아먹으려고 훔쳐온 알에서 부화한 병아리들이 여우를 엄마처럼 따르면서 남몰래 가슴앓이를 하게 되는 이야기다. 마지막 에피소드 ‘크리스마스를 지켜줘’는 산타 인형을 진짜로 착각한 오리와 토끼가 자신들이 산타를 죽였다고 믿으면서 생기는 해프닝을 담았다. 소심하고 무능력한 여우 외에도 생각이 많아 걱정도 많은 돼지, 힘세고 리더십이 강한 암탉 등 각각의 동물들에 부여된 관습적인 이미지들을 전복시키며 사랑스럽고도 유의미한 통찰을 낳는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2012)의 공동 감독이었던 벤저민 레너가 2015년에 출간된 자신의 그래픽노블을 직접 영화화했다. 부조리한 유머로 꽉 짜인 대사들이 핑퐁게임하듯 오가며 세대에 구애받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손으로 스케치하고 수채화를 입힌 2D애니메이션이 주는 자연적인 질감이 서정성과 온기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