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증언한다. 세상에는 여전히 참극이 존재하고, 그들에게는 구호가 필요하다고. 국경없는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 MSF)는 열악한 환경부터 분쟁지역까지 의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국제 인도주의 의료구호 단체다. 정치, 인종, 종교, 이념, 국경 등 세상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생명을 구하는 MSF의 활동은 1971년 의사와 언론 자유인이 모여 첫발을 디딘 이래 단 한번도 멈춘 적 없다. 현재 전세계 70여국 이상에서 분쟁, 전염병, 영양실조, 자연재해 등으로 고통받거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활약 중인 구호활동가의 숫자만 해도 3만명이 넘고, 한국을 포함한 28개국에 사무소를 설치해 활동 범위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하지만 MSF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지역은 넘쳐나고 1996년 서울평화상,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대중적으로 존재를 적극 알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국경없는영화제2017이다.
국경없는영화제는 MSF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현장에서 목격한 고통을 증언하고 소외된 지역의 위기에 대해 대중적 인식을 높이는 ‘테모이나지’(프랑스어로 ‘증언’)는 MSF의 중요한 모토이자 활동방식 중 하나다. 어쩌면 MSF가 영화에 눈을 돌린 건 당연한 일이다. 영화는 세계 각국의 현실을 증언하고 사람들에게 인도주의적 메시지를 호소하는 가장 힘 있고 효과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국경없는영화제를 준비했다. 12월 1일(금)부터 3일(일)까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국경없는영화제2017이 열린다. “세계는 우리의 응급실입니다”를 슬로건으로, 4편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이번 영화제에는 MSF 활동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게스트들이 함께 참여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증언할 예정이다.
영화제 개막에 앞서 11월 23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조앤 리우 국경없는의사회 국제회장, 티에리 코펜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등이 참석해 영화제의 취지와 방향에 대해 소개했다. 캐나다 출신 소아과 의사이기도 한 조앤 리우 회장은 “모든 현장에 파견 갈 수 없으니 우리가 영화를 들고 왔다”며 “국경없는의사회가 어떤 일을 하고 인도적인 지원이 어떻게 제공되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티 지진 당시 현장에서 이뤄지는 외과수술의 절반이 제왕절개수술이었다. 분쟁지역이나 위기상황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며 이번 영화들이 단순한 홍보 영상이 아닌 인간과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이라고 강조했다. 윤지현 국경없는영화제 준비팀장은 4편의 다큐멘터리에 대해 “활동 전반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구호활동의 딜레마와 한계를 보여주는 깊이 있는 작품들”이라고 정리하며 좀더 많은 관객과 만나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공감을 나누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MSF는 전세계 곳곳을 누비는 발길, 사람을 살리는 손길, 생생한 증언으로 세상을 치료 중이다. 그들과 동행하지 못한 당신을 위해 여기 스크린으로 생생한 현장을 옮겨왔다. 당신이 이 증언의 증인이 되어주는 만큼 세상은 좀더 나아질 것이다.
<리빙 인 이머전시> Living in Emergency
감독 마크 N. 홉킨스 / 2008년 / 15세 관람가 / 90분
라이베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전쟁지대 현장에 국경없는의사회(MSF)가 파견된다. 마크 N. 홉킨스 감독은 4인의 MSF 활동가들을 따라가며 제목 그대로 살아 있는 현장을 보여준다. MSF에 갓 파견된 26살 호주 출신 의사, 미국 테네시 출신 외과의사, 프로젝트 전체를 총괄하는 베테랑 활동가와 감독으로 구성된 팀은 열악한 환경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의사회의 활동을 낭만적인 영웅담이나 비극으로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카메라가 인상적이다. 의사들은 고된 일정을 소화하는 육체노동자에 가깝고 매 순간 힘든 결정에 직면한다. 긴급구호 상황에서 벌어지는 열띤 논쟁은 이들이 왜 MSF 활동을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증명하는 순간이다. 제82회 아카데미영화제 ‘베스트다큐멘터리’후보이자 국경없는영화제2017 개막작.
<어플릭션> Affliction
감독 페터 카사에 / 2015년 / 12세 관람가 / 70분
2015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서아프리카 일대를 강타한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나가는 전염병 앞에 전세계가 패닉에 빠져있을 때 국경없는의사회는 단독으로 최전선에 뛰어들어 전체 환자의 35%가량을 치료했다. <어플릭션>은 에볼라 창궐이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그린다. 외진 마을에서 시작된 에볼라가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기니 3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은 혼란 그 자체다. 각국 정부는 물론 국제사회조차 우왕좌왕하는 사이 전염병이 통제 없이 번지는 과정은 그것만으로도 참고할 만한 자료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 환자, 생존자, 현지인, 구호활동가 모두에게 공포와 혐오가 퍼져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심경을 안긴다. 전염병의 최전선에서 포착한 진실, 그야말로 현장에 있는 것마냥 생생하다.
<위험한 곳으로 더 가까이> Access to Danger Zone
감독 페터 카사에 / 2012년 / 12세 관람가 / 70분
‘위험한 곳으로 더 가까이’는 마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의 모토처럼 들린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콩고민주공화국 등 무력 분쟁이 발생한 지역으로 기꺼이 들어가 사람들을 돕는다. 분쟁지역 사람들은 총상, 폭발, 화상부터 강간까지 다양한 종류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기반시설도 무너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은 약자들에겐 지옥이다. 영화는 극한 상황에서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려 고군분투했던 활동가들의 증언을 전한다. 구호활동이라는 대의를 위해 이해관계자들과 협상하고 대립하는 모습은 구호활동의 또 다른 모습과 어려움을 짐작게 한다.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내레이션은 잔혹하고 날카로운 현실에 무게를 더한다. 제15회 리우데자네이루국제영화제 초청작.
<피 속의 혈투> Fire in the Blood
감독 딜런 모한 그레이 / 2013년 / 12세 관람가 / 85분
제약업계는 거대한 비즈니스다. <피 속의 혈투>는 1996년 이후 저가의 에이즈 의약품이 아프리카 및 남반부에 공급되는 걸 조직적으로 막고 있는 서양 제약회사들과 정부의 부도덕한 행위를 고발한다. 1천만명 이상의 죽음을 몰고 온 ‘세기의 범죄’를 멈추기 위해 사람들은 연대와 동맹을 시작한다. 4대륙을 넘나들며 촬영된 영화는 의약품의 접근성 확보가 왜 중요한지를 역설한 뒤 드라마틱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필요했던 크고 작은 좌절과 시련을 강조한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제29회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딜런 모한 그레이 감독이 국경없는영화제2017 기간 중 내한해 관객과 직접 만나 끝나지 않은 전쟁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