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일이다. S는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트랜스여성이었다. 페미니즘 모임에 나타난 S는 짧은 머리카락, 화장기 없는 얼굴에 바지 차림이었다. S는 자신을 여성이라고 소개했고,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S의 존재가 낯설었다. 어느 날 S와 잘 지내던 A가 S에게 고백을 받았다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나는 기어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걔 좀 불편하더라.” 언젠가 S가 치마를 입고 왔다. 손톱에는 매니큐어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S는 계속 모임에 나왔지만 가깝게 지낸 사람은 소수였다. 점점 S를 불편해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낯섦은 불편함이 되고, 불편함은 슬며시 경계심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감정의 이름이 바뀌면서 숨겨둔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S 때문에 남자의 신체를 극도로 경계하는 누군가가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 또한 공정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사람의 면전에서 문을 닫는 결정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석사논문 인터뷰를 위해 S에게 만나자고 했다. 석사논문 주제가 병역의무의 성별정치학이었는데, 보충인터뷰로 군대가 강요하는 남성문화에서 S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듣고 싶었다. 인터뷰를 수락한 S는 그날도 치마를 입고 나왔다. 인터뷰를 다 마치고 S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를 만나자고 전화해서 놀랐어. 네가 나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고, 나를 여자라고 믿지 않는 것도 알아. 그래서 오늘 치마를 입고 왔어. 내가 치마를 입을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때리고, 지하철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봐. 그래도 나는 치마를 입고 나왔어. 그런데 너는 나에게 군대에 대해 묻는구나.” 나는 서둘러 S에게 네가 남자라고 생각한 게 아니며, 인터뷰 대상에는 여군도 있다고 말했다. S는 사과를 듣자고 꺼낸 말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S는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라며, 자신이 한 인터뷰를 꼭 논문에 넣으라고 당부했다.
그때 처음 나는 S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자신으로 사는 걸 포기한 적이 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단호함이 있었다. 내 앞에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여성이 있었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해왔는지, 지난 몇달간의 내 행동들이 태엽이 감기듯 다시 배치되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S에게 직접 묻지 않았다. A가 S의 고백을 부담스러워했던 건 A가 다른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불편함을 정당한 감정으로 만들기 위해 사실에 편견을 계속 덧붙이고 있었다. 심지어는 이미 모임을 함께하고 있는 S를 배제하기 위해 한번도 본 적 없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리지어 흉보는 걸 비판의식이라고 착각했다. 성별이분법에 갇힌 건 S가 아니라 나였다. 내가 생각하고 행한 모든 것들은 전형적인 트랜스혐오였다. S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순간을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모든 운동과 이념이 특권을 성찰하지 않는 순간 억압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