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 반팔 입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는데, 오늘 산책을 나가니까 전부 패딩을 입고 있더라. 어쩜 날씨가 이러니. 하늘이 너무 예뻐서 평소 다니던 길을 조금 돌아서 출근을 했어. 근데 올해도 한달 남았더라고. 아, 끔찍해.’ 친구가 보낸 문자는 놀랐다가 감탄했다가 취했다가 기뻤다가 끔찍해 하는 감정으로 마무리되었다. 문득이라고 할 것도 없이 시간은 무심히 잘도 가고 우리는 그 앞에서 무력하다. 어찌하겠는가. 추워지고 괜히 쓸쓸하고 이른 연말 분위기로 달뜰때에도 우리는 그냥 하던 일을 하며 살아야지. 11월 <씨네21>의 북엔즈 서가에는 남다를 바 없는 일상에서도 웃음과 통찰, 스릴을 자아내는 책들이 꼽혔다. 이상하게 개그맨이라는 호칭은 어색한데 코미디언이라는 말은 제법 어울리는 유병재의 에세이집 <블랙코미디>는 딱 유병재스러운 책이다. 그의 SNS에서 보아왔던 짧게 치고 빠지는 유머러스한 단문들과 비관과 낙관이 뒤엉킨 에세이들이 담겨 있다. 제목과 함께 봐야 더 재미있는 그의 짧은 글들은 ‘이런 거 누구나 쓸 수 있는 SNS식 유머지’ 싶다가도, 역시 이런 글은 유병재밖에 생각해낼 수 없겠다 싶은 심상이 돋보인다. MBC 해직기자, 영화 <공범자들>에서 관객의 마음을 가장 일렁이게 했던 이용마 기자의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도 눈여겨봐야 할 책이다. 알다시피 그는 2006년 MBC 파업에 앞장서다 해직된 언론인이다. 해고 후 얼마 안 있어 복막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그의 책이라서가 아니라 사회비평서로서 가치가 있어 추천한다. 아이들에게 남길 요량으로 쓰기 시작한 글들을 모았으며, 10년 동안 한국 사회 전역에서 활동한 기자의 경험과 통찰이 담긴 정치, 언론 비평서다. <아홉번째 파도>는 표지만 봤을 때에는 아련한 연애소설인 줄 알았다. 여느 도시에서나 있을 법한 사건과 그것을 둘러싼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이 손에 잡힐 듯이 그려져 누구나 소설 속으로 푹 잠겨들어가 읽을 것이다. 핵발전소 건립, 사이비종교 포교 활동, 공무원과 정치인들 각자의 사정이 정교하다. 가상의 도시 척주 시내에 자리한 약국 옆 금은방, 그 옆 작은 슈퍼마켓 하나까지도 독자의 손에 실제처럼 쥐어주는 세밀화에 가까운 소설이다. 날이 차다. 이런 날에 땅에 발을 붙이게 하는 것도, 저 멀리를 내다보게 하는 것도 역시 멀리서 누군가 써내려간 글줄이다.
씨네21 추천도서 - 11월의 추천 책
글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17-11-21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아홉번째 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