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저스티스 리그> DCEU의 필살기가 되어줄 수 있을까
김현수 2017-11-20

모두가 함께 싸운다

마블 코믹스 히어로에 이어 DC 코믹스의 히어로도 뭉쳤다. 그동안 개별 영화들에서 솔로로 활동해오던 DC의 간판 슈퍼히어로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을 필두로 6명의 슈퍼히어로가 <저스티스 리그>에서 한데 모인다. 슈퍼히어로 시리즈 영화 계보의 변곡점 내지는 총정리에 해당하는 이 전략은 DC보다 한발 앞서 ‘어벤져스’를 내세운 마블이 선점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DC 입장에서는 탄생 자체로 어벤져스의 선배 격인 <저스티스 리그>야말로 전세를 역전시킬 필사의 반격과도 같은 기회라 여겼을지 모른다. 올해 <원더우먼>의 메가 히트 또한 이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드디어 베일을 벗은 <저스티스 리그>가 전세 역전을 위해 감춰뒀던 비장의 무기는 무엇이었나.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DC 익스텐디드 유니버스(DCEU)의 큰 그림은 또 무엇일지 조심스레 예측해봤다.

‘어벤져스’에는 원더우먼이 없다. 이는 마블과 DC의 결정적인 차이, 그러니까 <맨 오브 스틸>(2013) 이후 DC가 영화화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꾸려온 DCEU 전체의 전략과 방향을 설명할 중요한 단서다. 이미 수차례 시리즈로 영화화되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DC의 대표 캐릭터 슈퍼맨과 배트맨의 시리즈 리부트만으로는 DCEU 전체의 전략을 수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헨리 카빌의 슈퍼맨은 이전 배우들이 만들어낸 캐릭터에 비교되며 상대적인 굴욕감을 맛봐야 했고 벤 애플렉의 배트맨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3부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시작했다. 하다못해 확 바뀌어버린 배트모빌의 디자인까지 논란이 되며 팬들의 놀림감이 되는 식이었다. 어쨌든 마블에 등떠밀려 난항을 겪던 DC를 구원해준 이는 아마존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건너온 원더우먼이었다. 패티 젠킨스 감독과 배우 갤 가돗이 만들어낸 <원더우먼>의 성공은 잭 스나이더 감독의 비전이 있기에 가능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맨 오브 스틸>을 시작으로 지난 몇년간 DCEU의 전체 전략을 짜는 제작자이자 연출자로서 <저스티스 리그>를 세상에 내놓기 위한 판을 설계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원더우먼> <저스티스 리그>의 제작을 맡는 동안 그는 예기치 못할 사고를 겪게 된다. <저스티스 리그> 촬영 도중 딸의 사망 소식을 들은 그는 잠시 현장을 떠나 집으로 향했고 결국 제작 중간에 하차를 발표했다. 갑자기 치명적인 공백이 생긴 스튜디오는 부리나케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출한 조스 웨던 감독을 섭외해서 후반작업을 맡기기에 이른다. 10여년 전 <원더우먼> 영화화 프로젝트를 준비하기도 했던 조스 웨던 감독은 <저스티스 리그>의 크레딧에 각본가 크리스 테리오와 함께 각본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재촬영을 진행한 분량도 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스티스 리그>의 개봉을 앞둔 스튜디오의 상황 앞에 느닷없이 마블과 DC의 유니버스를 공유하는 감독이 탄생했지만 <저스티스 리그>는 앞으로 DCEU의 향방을 결정짓는 영화가 될 것이기에 반드시 만들어져야 했다.

사실 ‘슈퍼히어로들의 연합’이라는 컨셉은 코믹스의 역사에서는 마블의 어벤져스보다 DC의 저스티스 리그가 한발 앞서 흐름을 주도해왔다. 영화시장에서는 물론 마블이 먼저 <어벤져스>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같은 시리즈영화들로 시장을 선점한 상태. 더군다나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으로 이어지는, 즉 슈퍼히어로들의 대규모 연합이 외계의 적들과 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 이후 인류가 겪는 아픔까지도 다루는 영화가 등장하면서 슈퍼히어로 시리즈는 현실의 거울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슈퍼히어로는 왜 인류를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인간은 슈퍼히어로를 왜 필요로 하는 것일까. 관객을 한바탕 웃고 즐기게 할 목적으로 만들던 블록버스터영화들이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취한 전략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되기였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오직 자신만의 화법으로 화려한 액션의 볼거리 위에 여러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맨 오브 스틸>에서 조드 장군과 슈퍼맨이 벌인 싸움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 <슈퍼맨 대 배트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배트맨이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과연 슈퍼히어로는 필요한 존재인가. 잭 스나이더 감독은 배트맨과 슈퍼맨의 팽팽한 접전이 반짝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진지하게 지구의 위기를 고민하는 <저스티스 리그>로 이어지도록 이를 설계했다.

슈퍼맨의 죽음 이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저스티스 리그>는 사실상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소년 브루스 웨인의 부모의 장례식으로 시작하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배트맨은 부모를 잃은 자신의 분노와 공포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인류 앞에 나타나 어이없는 희생을 불러일으키는 슈퍼맨의 존재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를 법과 불법을 모두 동원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저스티스 리그>는 바로 그 슈퍼맨의 부재를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인류를 위해 장렬하게 목숨 바친 히어로는 이제 인간의 곁을 떠났다. 인류의 트라우마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슈퍼맨의 죽음 이후 계속되는 범죄들, 그리고 점점 혐오의 시대로 변해가는 삭막한 분위기를 담아낸다. 슈퍼맨이 없는 지구는 새로운 위기를 맞는다. 힘의 균형이 깨지면 그 틈으로 악이 창궐한다. 배트맨과 원더우먼은 어둠의 힘, 그러니까 전편에서 조드 장군을 깨워 둠스데이를 만들어냈던 장본인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의 노트에도 적혀 있었다는 그 힘에 맞서 싸울 존재는 결국 슈퍼맨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저스티스 리그>에서 본격적으로 제시하는 악의 근원은 이전 영화들에서보다 명확하게 제시된다. 우주의 절대악처럼 묘사되는 다크사이드라는 거대한 존재가 있고 그들의 똘마니 격인 스테펜울프가 파라데몬이라는 괴생명체들을 이끌고 지구를 찾는다. 그들은 지구에 숨겨진 마더박스라는 에너지의 근원을 찾아내 손에 넣고 우주를 정복하려 한다. 뒤이어 등장하는 배경 설명은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의 탄생 이유를 보다 친절하게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지구에서는 오랫동안 아틀란티스와 아마존, 그리고 인간 종족이 협력해 마더박스라는 물체를 꽁꽁 숨겨뒀다는 것. 원더우먼과 배트맨은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결코 다크사이드 세력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메타휴먼으로 알려진 아쿠아맨과 플래시, 사이보그를 찾아나서 팀을 결성한다. 이 과정은 다른 많은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그러하듯 <저스티스 리그> 역시 전형적인 플롯을 따를 수밖에 없다. 영화 초반, 여러 캐릭터를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서 드라마와 유머, 액션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는 사이보그와 아쿠아맨, 플래시와 원더우먼의 협업이 빚어내는 전투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DC 슈퍼히어로의 능력치를 십분 활용한 효과적인 액션들이 눈요기하듯 가득하다. 여기에 더해 플래시 역의 배우 에즈라 밀러나 아쿠아맨 역의 제이슨 모모아가 시의 적절하게 구사하는 개그는 아무래도 조스 웨던 감독의 투입으로 인해 영화의 톤 앤드 매너가 가벼워진 흔적처럼 느껴진다. 아쿠아맨과 플래시를 통해서 기존의 DCEU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유머가 쏟아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모든 세상이 함께한다

사실 슈퍼히어로 개개인의 특징이나 액션보다도 DCEU 전체를 관통하는 리그 결성의 명분이야말로 <저스티스 리그>의 화려한 액션을 보다 감동적으로 보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줄 터.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잭 스나이더 감독이 오랫동안 구상해왔고 또 영화 곳곳에 심어놓은 설정을 예로 설명할 수 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오래전부터 슈퍼히어로들의 연합의 의미에 대해 다름아닌 슈퍼맨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업그레이드된 슈퍼맨의 슈트에 크립토니안 문자 문양을 표면에 그려넣으면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새겨넣었다. “우리가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 모든 세상이 함께한다. 바깥으로 여행하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존재의 핵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모든 세상이 함께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했던 배트맨과 원더우먼이 메타휴먼 동료들을 규합해 슈퍼맨의 부활을 위해 팀을 결성하는 <저스티스 리그>의 이야기는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노래 <Come Together>의 제목이 의미하듯 무슨 일이든 함께할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저스티스 리그>는 DCEU를 “어둡고 현실적인, 그러나 신화적인 슈퍼히어로의 세계로 그리고 싶다”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말처럼,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에서 사람들이 찾는 희망의 의미를 6명의 저스티스 리그 멤버의 슈트 속에 새겨넣은 영화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