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큰아이가 어릴 적부터 품어온 한결같은 소망은 개를 키우고 싶다는 거였다. 6살 막내 녀석까지 가세해 “개 키우고 싶어~” 노래를 불러댔다. 나는 단호했다. 아빠도 개를 좋아하지만 아파트에서 키우는 건, 사람에게도 개에게도 못할 짓이라며 설득을 이어갔다. 직업의 이유도 있었다. 피와 땀이 밴 소중한 필름더미들 사이로 개털이 날아다니는 건 아니 될 일이었다. 아이들의 꿈은 기약 없이 유보될 듯 보였다. 그러던 지난겨울 집주인이 갑자기 집을 파는 바람에 쫓기듯 이사를 했고, 오래됐지만 마당에 감나무가 있는 집을 간신히 빌렸다. 인연이 닿으려고 한 것일까. 강화도에 사는 선배의 개가 여러 마리 새끼를 낳았다. 키울 사람을 수소문 한다기에 번쩍 손을 들었고, 아이들은 강아지를 데려오기도 전에 좋아 난리였다.
두어달 어미젖을 먹어야 심리적 안정감을 갖는다기에 기다렸다가 강아지를 받아왔다. 까만 리트리버였다. 녀석의 어미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유기견이었다. 탐지나 맹인안내를 하는 똑똑한 견종인데 어떤 사연이었을까. 어미 개에게 물어보았지만 꼬리만 흔들 뿐이었다. “가족이라 생각하고 키워달라”는 당부가 아니어도, 한집에서 먹고 자니 가족일 수밖에 없었다. 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까만 놈이라는 뜻도, 감나무집 개라는 뜻도 담긴 이름이었다. 사람만 보면 좋아라 오두방정을 떨어서 ‘오두방견’ , 사람들 살결에 하도 뜨거운 입김을 불어대 ‘스팀’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반년 만에 녀석은 누가 봐도 멈칫할 만큼 크게 자랐고, 감당하기 힘들 만큼 세졌다. 많이도 먹고 많이도 쌌다.
긴 추석 연휴. 반도 최남단의 외갓집으로 달리는 작은 차에서 사람과 개가 온종일 힘겨웠다. 휴게소에서도 녀석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았다. 가을 바닷가에서 녀석은 미친 듯 뛰고 힘이 다하도록 헤엄치며 놀았지만, 개를 무서워하는 식구가 있는 외갓집에선 내내 묶여 있어야 했다. 벅찬 환희와 구속이 날마다 교차하는 박진감 넘치는 열흘이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온 사람식구들은 각자의 일로 바쁘다. 개식구는 마당에서 구속 없는 자유를 만끽한다. 그런데 방금 감이 말을 걸어왔다. “그건 너의 작은 착각일 뿐이야, 그것이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