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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살아 있는 전설, 버니 매틴슨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17-11-01

끝없는 도전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1953년 입사 후 올해로 64년째 한해도 거르지 않고 출근 중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장수 애니메이터 버니 매틴슨이 제19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디즈니에 입사해 사내 우편배달부부터 경력을 시작한 버니 매틴슨은 보조 애니메이터, 스토리 작가를 거쳐 감독과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설립자 월트 디즈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년간 함께 근무했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현역 애니메이터로 활약 중인 디즈니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08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큰 기여를 한 아티스트로서 ‘디즈니 레전드’에 선정되었고, 2013년 60년 근속상을 받았다. 걸어온 길이 곧 역사가 된 거장이지만, 그는 스스로 무언가 되고자 의식했다면 지금의 위치에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지내며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라는 그는 내일도 출근 도장을 찍고 책상에 앉아 손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버디 매틴슨의 삶은 디즈니가 디즈니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디즈니 스튜디오는 애니메이터들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한국 방문은 매우 이례적이다.

=BIAF와 인연이 있는 에릭 골드버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감독. 2012년 BIAF에 마스터클래스로 방문했었다)의 주선으로 왔다. 수잔(에릭 골드버그의 부인이자 디즈니 미술감독)이 이번에 다시 에릭이 한국을 방문해 디즈니 클래식에 대한 강연을 하는데 나와 함께 가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직접 관객과 만나니 행복하다. 나를 열심히 설득해준 수잔에게 감사를 보낸다! (웃음)

-최장수 애니메이터로서 2008년 디즈니 레전드에 선정됐다.

=오래 일한 게 전부다. (웃음) 한편으로 그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도 없다. 애니메이터가 아니었다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월트 디즈니를 비롯해 9명의 거인(‘나인 올드맨’이라 불리는 초창기 9인의 수석 애니메이터. 레 클라크, 마크 데이비스, 올리 존스턴, 밀트 칼, 워드 킴볼, 에릭 라슨, 존 라운스베리, 볼프강 라이테르만, 프랭크 토머스)과 함께 작업했던 기억들은 그것만으로 소중하다. 당시 나는 너무 일이 하고 싶었고 매일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근거렸다. 다르게 표현하면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정신없는 나날들이었다. (웃음)

-1953년 사내 우편배달부로 시작해 1973년에야 정식 애니메이터가 되었다.

=나는 언제나 그림 그리기를 즐기던 소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머니가 진로를 물었을 때 막연히 디즈니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그림 몇장을 챙겨 그길로 디즈니 스튜디오 앞에 내려주곤 한 시간 후에 데리러 온다며 가버리셨다. (웃음) 약속도 없이 스튜디오로 들어가려고 했으니 당연히 경비원에게 붙잡혔다. 나이 많은 경비원이었는데 내가 그린 그림들을 스윽 보더니 잠깐 기다려보라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고 그의 소개로 인사과장을 만났다. 인사과장은 당장은 자리가 없다며 사내 우편배달부 자리를 제안했고 그게 내 첫 출근이었다.

-보조 애니메이터로 10년 넘게 일했다.

=8개월 정도 우편배달부를 하다가 자리가 나서 어시스턴트로 옮겼다. 그땐 자리가 없어서 조니 본드라는 어시스턴트가 점심시간마다 사무실을 빌려줘 잠깐씩 작업했다. 이후 캐릭터 작업 등을 거쳐 9인의 거인들과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마크 데이비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1959)의 보조를 했고 이후 에릭 라슨 밑에서 10년을 함께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에릭 라슨에게 배운 거다. 그는 내 아버지 같은 존재다.

-월트 디즈니, 그리고 나인 올드맨과 함께 회사를 다녔는데.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웃음) 모든 게 도전이었다. 한번은 <로빈 후드>(1973) 작업 때 뱀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꼬리의 움직임을 묘사하기 어려워 조언을 구했더니 ‘네가 알아서 해’라고 하더라. 그래서 진짜 이틀만에 알아서 했다. (웃음) 디즈니에서의 작업은 거의 그런 식이다. 답은 본인이 찾아야 한다. 월트 디즈니는 어디에 있든 존재감이 넘치는 거인이었기에 항상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말단 직원인 내게 종종 커피를 사주기도 했다. (웃음) 열정적이면서도 냉철한 사업가인 한편 기품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다. 9인의 거인은 각자 개성이 다양해서 옆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디즈니의 변화를 함께해왔다. 최근엔 디즈니도 3D애니메이션으로 전환했는데.

=지금도 디즈니는 원화나 스토리 스케치, 배경 디자인을 전부 손으로 그린다. 그런 다음에 출력 작업과 애니메이팅을 컴퓨터로 하는 거다. 프로세스 전반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 어떻게 보면 애니메이션 포토 트랜스퍼(APT, 사진을 찍어서 그림으로 움직임을 옮기는 방식) 등 디즈니의 대표적인 작화 방식이 컴퓨터 작업과 매우 닮았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도 젊은 애니메이터들은 이전 세대와 똑같은 방식으로 공부하고 훈련한다. 항상 그렇지만 근본적인 것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캐릭터의 움직임, 빈 스크린에 상상력을 채워넣는 창의력, 끊임없는 수정작업으로 작품의 질을 올리는 방식 같은 것들 말이다.

-바보 같은 질문을 하나 하겠다. 평생을 해온 만큼 다른 풍경이 보일 것 같다. 당신에게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

=즐거움, 그리고 도전이다. 그림은 나를 즐겁게 하고 도전은 내가 멈추지 않게 만든다. 일이 힘들어도 하나씩 해결해나간다는 느낌이 동기가 된다. 그런 면에서 디즈니의 작업 방식은 내게 잘 맞는다. 완성작이 나오기까지 무수한 수정 과정을 거치고 끊임없는 난제들이 주어진다.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하면서 배운 건 단 한 가지다. 혼자 작업을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거다. 서로 협력해서 난제를 해결할 때 언제나 조금 더 나아진 결과물이 보답처럼 돌아온다. 솔직히 정말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 이상 해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걸 해봤다. 하지만 그런 내게 아직도 기회가 주어지고 지금도 구상 중인 게 있다. 디즈니의 다음 프로젝트가 기밀이라 말할 순 없지만 이렇게 새로운 도전에 맞설 수 있다는 건 말 그대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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