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에서 공동대책위원회가 피해자의 편지를 대독하고 있다.
30개월. ‘남배우A 성폭력 사건’이 유죄로 인정받기까지 피해자가 법정 다툼으로 보낸 시간이다. 남배우A는 2015년 4월 가정폭력 장면을 연기하던 중 상대배우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감행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1심에서 ‘업무로 인한 행위’라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내렸고, 피해자의 항소 끝에 지난 10월 13일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수강명령 40개월)이 선고됐다. <씨네21>은 올해 초부터 ‘#STOP_영화계_내_성폭력’ 기사(1079호 ‘스페셜’)를 시작으로,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라는 긴급포럼(1090호 ‘스페셜’)을 열어 이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영화계 내 성차별 해소의 연장선에서 이번 사건의 판결이 지니는 의미가 무척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항소심 선고 공판 이후 남배우A 성폭력 사건의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10월 24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유죄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해자 여배우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편지를 통해 심경을 전했다. 자신의 신상보다 사건의 본질에 집중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한 그는 편지에서 “나는 15년 경력의 배우다. 연기와 현실을 혼동할 만큼 미숙하지 않다”며 “연기를 빙자한 추행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가해자 남배우A와 관련해서는 “나에 대한 자극적인 의혹은 모두 허위사실”이며 “가해자가 언론을 통해 유포하고 있는 일방적인 주장은 항소심에서 사법적 판단을 받은 것”이라고 단호하게 일축했다. 이어서 “연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나의 방식”이라며 앞으로의 각오를 전했다.
조인섭 변호사는 항소심 결과에 대해 “강제 추행과 무고죄(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에 대해 재판부가 가해자의 고소를 문제삼은 것)까지 인정하고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점은 아쉽다”면서도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이 주요 부분에서 일관된 이상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다시 확인”했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짚었다. 나아가 판결문에서 “감독의 지시가 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와 연기 내용을 공유하지 않은 이상 정당한 연기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밝힌 것과, “연기를 하다가 나온 우발적인 행위라고 해도 강제 추행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한 점을, 앞으로 촬영현장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한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공대위쪽의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공대위에는 여성영화인모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찍는페미,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등 12개 단체가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이번 사건이 영화계 전반의 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뜻을 같이했다. 남배우A는 가해 사실을 부정하며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또 얼마간의 법정 다툼을 감수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게 됐다.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 영화계 환경 개선에 대한 영화계 전반의 합의와 의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다시 한번,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