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녀는 어떤 언론사의 사진기자다.
11년 전엔 사진을 공부하는 새내기 학생이었다. 2006년 5월 4일, 초대형 미군기지를 짓기 위해 먹구름처럼 몰려든 공권력이 평범한 농촌마을 대추리를 에워싸고 중장비를 동원해 학교와 집들을 부수며 진격해오던 ‘행정대집행의 날’, 그는 거기에 있었다. 사진 전공생이었지만 사진을 찍는 대신 친구들과 스크럼을 짠 채 어두운 교실 구석을 지켰다.
대추분교 정문이 박살나고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은 전쟁터가 되었다. 경찰이 진압봉을 휘두르며 교실 안까지 진입하는 건 삽시간이었다. 불 꺼진 교실 안은 비명과 울음의 도가니였다. 학생들은 하나둘 팔이 꺾이고 목덜미를 붙들린 채 연행되었다. 나는 그 장면을 찍었다. 그리고 이동했다. 학교 안과 밖, 마을 곳곳에서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서 어느 곳을 지켜(봐)야 할지 혼란스러운 하루였다. 그날, 내가 가족과 잠시 살며 마을사진관을 꾸렸던 ‘우리집’도 바스라졌다. 대추리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나는 내 마음조차 헤아릴 수 없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긴 시간이 왜 이리 짧은지, 눈 깜빡할 새에도 11년은 흐른다. 얼마 전까지도 나는 그때 그곳에, 그가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은 알게 된 그 사람. 며칠 전 어떤 친구와 저녁밥을 먹다가 그곳에 그가 있었다는 사실을, 교실에서 사진 찍는 나를 보았고, 사진만 찍고 나가버린 나를 원망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미안해졌다. 그에게 전화해 뭐라도 설명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내가 무엇이어야 했는가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날 나에게 실망했다면, 기대한 건 무엇이었을까. 초라한 사진사가 슈퍼맨일 수는 없지 않느냐는 볼멘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사진기 뒤에 숨어 지켜보는 것 외에 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지켜본다는 것과 지킨다는 것은 실로 다르다. 사진기자가 된 그녀의 지금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기로 한다. 그 후로도 내가 얼마나 실망스러운 짓을 하며 ‘작업’이라는 걸 해왔는지 돌아보아야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