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를 쓴 J. D. 밴스는 내 친구의 남편과 몹시 비슷한 이력을 갖고 있다. 백인, 미국인. 집안에서 유일한 대졸자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한곳의 로스쿨을 나왔다. 학력만 다른 가족과 다른 게 아니다. 친구의 남편은 그 집안에서 몇 안 되는 전과 기록이 없는 사람이다. 남편 말고도 전과 기록이 없는 삼촌이 한명 더 있는데, 웃지 못할 일은, 그 삼촌이야말로 직업적인 범죄자이며 가장 심각한 위법을 많이 저지르는 데다 가장 매너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가친척 다들 이런저런 전과를 갖고 있는데 “사람들은 참 좋다”고 한다. <힐빌리의 노래>로 그 ‘참 좋음’의 뜻을 배웠다.
이 책에 대해 말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이것이다. 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까?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분석할 때 유난히 많이 등장했던 단어들- 러스트벨트, 레드넥, 화이트 트레시- 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가난한 백인들의 역사를 보여주고, 그들이 어떻게 트럼프를 뽑은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는가를 말한다. <힐빌리의 노래> 속 미국은 공포영화와 닮은 공간이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본 사람이라면 더 떠올리기가 쉽겠지만. 예컨대 이런 것이다. <힐빌리의 노래>에서 앵두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어떤 남자가 자기 여동생 이름을 언급하며 “걔 팬티를 먹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됐다. 그래서 집으로 차를 몰고 가 여동생의 속옷을 몇장 집어가 그 말을 한 남자를 칼로 위협해 진짜로 속옷을 ‘먹게’ 만들었다. 이런 행동양식이 ‘힐빌리의 의리’가 된다. “행동이 극단적이긴 했지만, 누이의 명예를 지키거나 죄인에게 죗값을 물릴 때처럼 어떤 명목이 있을 때만 그렇게 행동했다.” 자경단이라는 게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말하려면 서부개척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일이지만, 21세기에도 여전한 논리로 작동 중이다. 이쯤에서 부연하자면 J. D. 밴스는 2016년 이 책을 발표했을 때 31살이었다. 책 속 이야기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아니라는 뜻이다.
<힐빌리의 노래>가 흥미로운 또 하나의 이유라면, 이 책의 저자는 그런 환경에서 나고 자라 주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성장했지만, 그들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갔다는 데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기억하는 한평생 마약중독자였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어머니에게 남길 유산의 몫을 증손자인 그와 그의 누나에게 대신 나눠주라고 유언장에 썼을 정도였다.
그는 해병대로 이라크에서 복무했는데, 그곳에서의 시간이 자신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이라크의 어느 소년에게 2센트짜리 작은 지우개를 줬는데, 소년이 그 선물을 기쁘게 받은 순간의 얼굴을 말한다. “기뻐하는 소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가 얼마나 행운아였는지 조금씩 깨닫게 됐다.”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이 이런 교훈을 얻는다는 게 헛웃음나는 일이 아닐 순 없지만, 어쨌거나 그는 결심한다. “그때 나는 누군가 지우개를 건넬 때 미소 짓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동정하는 위치에서 자족하는 게 아니라, 도움받아야 할 때 도움을 받아들이는 일의 중요성을 말한다(이 직전까지 그가 아주 긴 분량을 할애해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감내했던 것들을 이야기해왔다는 점을 빼놓아선 안 된다). 그외에도, 해병대에서의 경험은 그를 바꿔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첫째. 체력단련, 개인 위생, 새 차 구입부터 은행 대출까지, 결정을 할 때 전략적으로 사고하기를 요구하고 그 요령을 가르쳤다. 둘째. 스스로를 향한 기대치를 바꿔놓았다. 해병대는 다른 인종과 사회계층 출신의 남녀가 한팀을 이루어 가족과 같은 유대를 맺고 작업할 수 있음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J. D. 밴스가 대학에 진학하고 예일대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후반부의 이야기에 이르면 왜 음모론이 판을 치는지, 왜 언론에 대한 불신은 심화되기만 하는지와 더불어 신분상승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가 나온다. 이러니 여러 방면으로 흥미로운 책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만큼이나, 미국의 결정에 너무 많은 것들이 요동치는, 미국을 바라보고 사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도.